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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건종 목사 salllee@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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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33-43 포도원과 소작인의 비유>

“다른 비유를 하나 들어보아라. 어떤 집주인이 있었다. 그는 포도원을 일구고,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열매를 거두어들일 철이 가까이 왔을 때에, 그는 그 소출을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저는 지난주에 개신교 수도회인 천안의 디아코니아 자매회에 주말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가을의 맑은 하늘과 그곳의 언님들이 잘 가꾼 아름다운 가을 꽃들을 보며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누렸습니다. 그곳에는 너른 잔디밭이 있어서 저는 매일 맨발로 그곳을 걸으며 산책을 하다가 한쪽 편에 있는 창고를 덮고 있는 박 넝쿨을 보았습니다. 박 넝쿨은 아주 자랑스럽게 큰 박덩어리 하나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넝쿨은 다 말라버렸지만 박은 너무나 탐스럽고 아름다워서 가까이 다가가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이제 추석 한가위를 지내고 우리는 풍성한 자연의 열매를 보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절이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의 초라한 결실을 돌아보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설교자로서 늘 말씀을 선포하는 저로서는 말씀 앞에서 말할 수 없는 자괴심을 갖고 괴로워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어느 해 늦은 가을에 제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 장미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늦은 가을에 홀로 핀 장미가 매우 처연하고 안쓰럽게 느껴져서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왜 남들처럼 봄에 활짝 피어나지 않고 지금 때 늦게 홀로 피었을까, 늦게라도 꽃을 피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마음이 아프게 전해져 왔습니다.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 잘 해 왔다고 자부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나의 본 모습은 제대로 꽃 한번 활짝 피어보지 못한 가을 장미의 슬픔이 남아 있었습니다. 수도자처럼 기도생활을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목회를 하면서도 구도자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적 방황으로 나는 지쳐 있었고, 이제는 나 자신과 하나님에 대해서까지 화가 솟아올라왔습니다. ‘쭈그렁밤송이 3년 달려있다’는 말처럼, 결코 이대로 내 삶을 지속하거나 마감할 수 없는 통한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얼마 전 어릴 때 함께 신앙생활 했던 선배님이 다녀가시면서 계속 반복해서 말했던 성경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6) 무섭고 두려운 이 말씀이 그분의 가슴에 못이 되어 그분에게 깊게 고통과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온전함”을 회복하기 전에는 결코 쉬지도 자유하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 내 모습을 비춰봅니다. 지금 나는 어떤 열매를 내 놓을 수 있을까? 더 이상 이 질문이 나에게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미 내 삶에 대한 물음에서 열매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선물로 나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나 또한 그분께 무엇을 드림으로 환심을 살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나를 알고 나 또한 그분을 알기에, 이 신뢰와 친밀 사이에서는 어떤 거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뻔뻔스럽고 똥배짱 같기도 하지만, 그분은 그저 내가 그분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 품에 안겨서 먹고 쉬고 자는 갓난아이의 재롱을 그분이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 그것이 그분에게 가장 큰 예물이라는 것을 압니다. 혹 나에게 어떤 열매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위대한 사랑의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어서 맺어지는 그 어떤 것일 텐데,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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