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가난한 사람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가난한 마음 속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의미이리라..
즉 어린아이의 마음 곁에는 항상 부모가 있는 것과 같다.
어린 아기는 삶에 대한 시비나 걱정이 없다. 오직 부모가
보살펴 주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서 늘 행복한 웃음을 짓지 않는가.
누군가가 말했다. “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행복을 선택할
수가 있다.”
만일'행복'을 저울에 달면 행복이 51`%, 불행이 49%이더라도 저울은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된다.
행복의 조건에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가 없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생각을 바꾸면 행복할 것이다"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1%의 생각, 이것이
가난한 마음이라면 어떨지?
그 넓은 바다도 3%의 소금이 썩지 않게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아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고, 니고데모는 지식이 많아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다.
열 두 제자는 무척 가난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끼도
그 둥지가 있거니와 우리 주님은 머리 누일 곳조차 없지 않았던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자신의 작음과 가난함을 지극히 사랑함으로써
주님의 자비로우심에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어린 아기가 되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마더 데레사, 그분도 "가진 것이 많을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습니다. 가난은 놀라운 선물이며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고 했다.
김용택 시인은 "세상의 길가'라는 아름다운 시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내 가난함으로 인해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같이 하아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주님, 당신이 지금 저에게 소원이 무엇이냐? 고 물으면 저는 서슴없이 “제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어주십시오" 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님, 사람들 앞에서 부유한 자로 처신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누군가를 멸시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연민의 마음을 갖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부족한 가운데서도 감사할 줄 몰랐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 잇속을 채우려고
안간 힘을 썼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상대방을 배려하고 염려하는데 인색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불평, 불만을 일삼았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게 있는 것을 기꺼이 나누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비워내지 못하고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로 가득 채웠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서 늘
가난한 자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