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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혜선 세라피나 수녀 srsera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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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그를 만난 것은 공생활 초기 갈릴래아 호숫가에서였다.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애썼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돌아와 지친 마음으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군중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밀려들었는데, 그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나는 그의 배에서 설교를 하고 싶어 했고 그는 순순히 허락했다. 군중이 돌아가자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고 했다. 호수의 사정이나 고기잡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 한번 더 나의 말을 따라주었다. 우직하고 순수한 무엇이 그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예상외로 고기가 엄청 많이 잡히자 그는 두려워하며 나에게 떠나가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도리어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 아마도 영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그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따름이 한 번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그때는 미처 몰랐으리라.
모든 사람이 독특한 존재인 것처럼 내가 부른 첫 제자들도 모두 달랐다. 그는 좀 다혈질적이었다. 자주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리고 행동했다. 때로는 최상의 칭찬도 듣고, 때로는 호된 꾸중도 들었다. 심지어 '사탄'이라고 까지. 감히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해서 걷다가 금방 빠져서 살려달라고 하던 일이나, 제법 너그러운 체 하려고 잘못한 형제에게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느냐고 묻던 일이나 모두 그의 덤벙대는 일면을 보여준다. 그때 일곱 번 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며 무한한 용서를 제시했을 때 그는 얼마나 무색했으랴! 타볼산에서는 초막 셋을 지어 살자고 자신의 황홀한 체험을 고백한 그는 정말 계산 없는 사람이었다. 겟세마니에서의 그 힘들었던 순간 함께 깨어있지도 못했으며 나를 잡으러 온 대 사제의 종의 귀를 칼로 내리치기도 했으나 목숨이 두려워 위기의 순간 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인물이다. 새벽닭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하염없이 울었던 인간 베드로. 그렇지만 모두가 다 도망가 버린 그 시점에 걱정이 되어 대사제의 뜰 안까지 들어왔던 그 마음, 진정 나를 배반하고 싶었던 것이 아님을 안다. 목숨이 위태로운 현장에서 용감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그가 유다스처럼 절망하지 않고 비겁한 모습 그대로 견디어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부활 후 나는 그에게 사랑의 확인을 세 번씩하면서 그의 상처를 씼어 주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의무가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고 싶었다. '양떼를 잘 돌보는 것' 양들이 위험할 때는 목숨도 바치는 목자. 이러한 아픈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든든한 바위로 닦여져 가고 있었다. 나의 영으로 무장된 뒤 열한 제자들의 대표로서 그는 드디어 사람 낚는 어부의 역할을 당당히 하며 교회의 기초를 세웠다. 그리고 로마에서 선교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 감히 스승처럼 똑바로 못 박힐 수 없다고. 그는 나를 따랐다. 그래서 지금 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바오로. 그는 나의 생시의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도다. 영리하고 많이 배웠고 장차 유능한 율사가 될 젊은이요, 그리스 문화권에서 자란 로마시민권자인 동시에 벤자민 지파의 유대인으로 탄탄한 배경을 지닌 유망주였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특별히 신앙적인 면에서.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이론으로, 실천으로 확고했다. 그는 내 이름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단죄하였다. 젊은 스테파노가 내 이름 때문에 돌에 맞아 죽을 때 그는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암 하느님도 모르는 무리들은 그런 벌을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적극적인 열정과 대담성이 탐이났다. 그는 좋은 씨만 떨어지면 수십배로 열매 맺을 수 있는 비옥한 밭이었다. 문제는 그 씨가 죽정이었던 것이다. 그가 충성으로 믿고 섬기는 것이 허상이요, 그들이 만든 하느님이었음을 몰랐다. 그래서 참 하느님을 나를 통해 알게 하고 내 도구로 쓰고 싶었다.
다마스쿠스 사건. 그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할 권한을 부여받고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가 박해하는 사람들이 곧 나, 예수라고 일러주었다. 그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섬기고 믿어왔던 신앙체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이니까. 그의 충격은 엄청났다. 한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앞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진리에 열려 있는 자였다. 결국 옛것을 모두 버렸다. 밭에 묻힌 보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가진 것을 다 팔았다. 그는 나의 십자가의 지혜를 이해하고 그 누구보다도 십자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이 셋이라도 기꺼이 바쳤으리라. 열 한 사도들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더 이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하던 율법의 짐을 이방인들에게 지우지 말자고 과감히 결정한 것이다. 십자가 구원의 의미가 제 모습을 갖도록 말이다. 만민구원을 위해 아버지와 내가 이루어냈던 그 문으로 이방인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 놓았다. 온갖 죽을 위험과 박해를 무릅쓰고 삼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하며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을 누비면서. 그는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재능과 몸과 마음 모두를 아낌없이 다 바치고 순교의 화관을 썼다. 그의 밭에 뿌려진 좋은 씨는 수백, 수천 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나의 좌청룡 우백호라 할 수 있는 두 거장이 하늘에 입적한 날. 모든 성도들과 함께 맑고 향기로운 술을 거르고 연한 살코기를 준비하여 잔치를 벌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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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가톨릭 마산교구 주보 _ 2024년 4월 28일 부활 제5주일 __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4) 2024.04.28 6 윤행도 가롤로 신부/ 월영본당 주임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2013.03.14 3765 정혜선 세라피나 수녀 srsera25@hanmail.net
997 부활 승천 대축일 2013.03.14 3761 김종봉 요한 신부 baramjohn@hanmail.net
996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2013.03.14 3761 박봉석 세례자요한 bs12147@hanmail.net
995 연중 제20주일 2013.08.18 3759 이청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fxaverio@hanmail.net>
994 연중 제4주일 2013.03.15 3759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993 연중 제14주일 2013.03.14 3759 전주희 목사 rising223@hanmail.net
992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2013.03.15 3757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991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으면서 2013.03.15 3757 오방식 목사 bsotm@hanmail.net
990 연중 제14주일(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2013.03.15 3755 왕영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989 대림 제 2주일 (인권 주일) 2013.03.14 3755 정명희 소피아 수녀 sophiach@hanmail.net
988 대림 제1주일 묵상 - 네 번째 오심과 기다림 2013.03.14 3754 이준용 대건안드레아 leejuneyong@hanmail.net
987 연중 제26주일 묵상 - 가장 큰 사람 2013.03.14 3754 이호자 마지아 수녀 jaho264@hanmail.net
986 연중 제33주일 - 좁은 문(루가 13,22 ~ 30) 2013.03.14 3752 토머스 키팅 신부
985 그리스도 왕 대축일 2013.03.14 3750 오창열 사도요한 신부 ocyjohn@hanmail.net
984 주님 승천 대축일 2013.03.14 3750 정규완 신부
983 연중 제 11주일 - 많이 용서받은 사람 2013.03.14 3749 박봉석 세례자요한 bs12147@hanmail.net
982 연중 제23주일 ( 마태오 18,15-20 ) 2013.03.14 3747 정명희 소피아 수녀 sophiach@hanmail.net
981 삼위일체 대축일 2013.03.14 3744 왕영수 신부
980 연중 제32주일 2013.11.08 3742 박봉석 세레자 요한 <bs12147@lh.or.kr>
979 부활 제5주일 묵상 - 포도나무 가지의 역할 2013.03.14 3742 윤행도 신부 munyman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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