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두울 세엣 - - - ” 어 ! 성호를 긋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깨어나 조용하고 평화롭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고 하루를 시작하려는 데, 조급한 마음에 손으로는 성호를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 - - ”가 아닌 “하나 두울 -
- -” 하고 있는 저의 모습에 순간 화들짝 놀라며 어이없이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은 가끔 식사 전 기도를 할 때도 발생합니다.
오 주님! 제가 이렇다니까요.
내가 살아가는 삶이 세상의 속도에 이끌려 아무 의미 없이 빨리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내가 본래
지키려고 생각했던 속도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맞는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고 성호를 긋다보면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제안에 현존하시고 온몸 세포 하나하나에 활동하고 계심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세 위격,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 높고 낮음도
없이 현존하시고 일치하시는 그 신비를 어리석은 저는 그저 믿을 뿐입니다.
토마스 키팅 신부님은 삼위일체 안에서 완전한 비움을 통해 성부는
성자께, 성자는 성부께 흘러들어간다.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묶는 것이 성령이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 상호간의 사랑이다. 성부ㆍ성자ㆍ성령은 각자
안에서 활동하기 보다는 서로 안에서 활동하시고 살아계신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공통된 마음에서 솟아나오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선물이다.
성령은 예수님의 거룩한 인격 안으로 그리고 그분의 지체인 우리 안으로도 흘러넘치는 하느님의 생명이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가 뜻하는 바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부는 당신의 모든 것을 성자께 남김없이 주시고, 성자는 자기의 모든 것을 성부께 승복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 사이를
끊임없이 사랑으로 이어주십니다. 즉 사랑에 찬 자기 비움과 증여로 완전한 승복의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향심기도는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향심기도의 정규적인 수련을 통하여 매일의 삶속에서 복음의 관상적 차원을
살아가기로 투신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는지? 사랑의 소명을 살고 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