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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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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희망, 빛으로 대림환 4개의 촛불을 켠 대림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 신앙생활과 하느님 말씀을 들음에는 오늘 복음 장면은 성 마리아 어머니의 기다리는 신앙인 상을 요구합니다. "당신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라는 전혀 예기치 못한 천사의 예수 수태고지에 놀란 성 마리아께서는 "이것이 정말 하느님의 뜻입니까?" 하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 이것은 성 마리아의 믿음이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천사의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고, "예,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성 마리아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성자를 당신의 육체 안에 잉태하기 이전에 마음 속에, 정신에 신앙 안에 먼저 잉태했습니다. 그녀는 성부께서 그녀에게 한 제안에 "예"라고 대답했을 때 자기 의지의 가장 깊은 곳에서 아기를 잉태한 것입니다. 성 마리아는 그녀 자신의 첫 번째 “예”라는 대답 속에 포함될 다른 삶의 모든 “예”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어떤 마을로 가셨는데 부인인 어떤 처녀가 맞아들였다.”우리는 이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처녀여야 합니다. 처녀란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처럼 다른 표상들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말합니다. 처녀는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영혼은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인’은 영혼의 가장 고귀한 호칭이며 처녀보다도 더 고귀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자신 안에 맞아들이는 것은 좋은 일이며 그렇게 맞아들일 때 그는 처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이 하느님께는 더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 은총에 대해 감사하는 길은 열매를 맺는 것이며, 따라서 성부의 마음 안에 다시 예수를 낳는 영원한 탄생 속에서 영혼은 부인이 됩니다.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가 먼저 영적으로 하느님을 낳지 않았다면 결코 하느님은 육신으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그리스도께 당신을 낳은 모태는 복되다고 말씀드렸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를 낳은 모태만 복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복됩니다.” 마리아에게서 육신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처녀, 곧 선한 영혼 안에서 영적으로 탄생하는 것이 하느님께는 더욱 가치 있는 일입니다.
애착에서 해방된 처녀인 부인은 자신에게나 하느님께나 똑같이 가까이 있습니다. 그 부인은 많은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보다 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습니다. 부인인 처녀는 매일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의 탄생인데 매일 그녀는 가장 고귀한 근저에서 수백 배, 수천 배, 아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성부께서 당신의 영원하신 말씀을 낳으시는 그 근저에서 처녀인 부인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성부의 마음에서 나오는 빛이신 예수께서는―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그분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나오는 ‘빛이며 광채’이시다 ―그 부인과 함께 계시며 부인인 처녀는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가 되어 성부의 마음 안에 있는 순수한 빛으로 예수와 함께 빛납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 한편을 여러분들과 함께 음미하며 오늘 복음 장면을 묵상해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 시에서 말하는 '나'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우리는 다만 의미 없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 가서 구원의 열매를 맺는 꽃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시는 하느님. "아브라함아!" "모세야!" "엘리아야!" "마리아야!" "요셉아!" 라고 당신 안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는, 당신 안에서 꽃이 되라고 우리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 주시는 하느님. 이제 하느님께서는 누군가가 당신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누군가 당신 이름을 불러 주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이름을 불러 주는 자에게 가서 꽃이 되고 싶어 하시는 하느님, 이런 하느님의 마음을 여러분은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라고 당신의 소망을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와서 잊혀 지지 않는 의미가 되고 싶어 하십니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다오. 이름을 불러 주면 나는 그에게 가서 아름다운 꽃이 되고 잊혀 지지 않는 의미가 되어 줄 것이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이런 간절한 소망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되고 싶어 하시는 하느님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히브리 유대인 이스라엘 백성이 4천년 동안 메시아 구세주 탄생을 기다렸고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한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의미의 대림 4주일 마지막 결론의 주인공으로서 성 마리아 어머님의 기다림 신앙인상 충실한 믿음의 모델 원형으로서 오늘 복음 성서는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약혼녀 처녀인 마리아에게 찾아가게 하시고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고 다정히 이름 불러 주셨습니다. 구원의 청혼에 “예”하고 응답하신 마리아는 이제 의미없는 몸짓이 아니라,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시며 하느님 앞서 마리아는 구원의 열매를 맺는 구원의 어머니 꽃이 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상식적 진리를 넘어서는 성령의 진리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보다 더 큰 믿음의 고백으로 말입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자 하느님께서 마리아께로 달려 오셔서 성령의 열매로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는 인간 구원의 열매를 맺는 꽃이 되었습니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이름을 불러 주셨기 때문에 하나의 의미 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던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꽃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입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받게 된 아름다운 여러분의 세례명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말입니다.
비록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상식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여도, 미련스럽고 바보스럽게 보여도, 손해 보는 것처럼 보여도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요셉처럼, 마리아처럼 “하느님! 당신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이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시어 향기로운 꽃,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꽃이신 하느님의 향기를 맡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삶의 깊은 의미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머리를 앞세우고, 우리 상식을 앞세우고, 우리 이익을 앞세우고, 우리 자존심을 앞세우면서 하느님의 이름을 마음 깊이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미 없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서로 다정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의 이름을 따뜻이 부릅니다. “여보, 자기야, ……” 하지만 그 사랑이 식으면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어이, 야, 봐라, 보소, 당신……” 이름이 바뀌면 의미도 바뀝니다. 여러분은 서로를 어떻게 부릅니까? 여러분은 언제 하느님의 이름을 가슴 깊이 다정히 불러 보았습니까? 대림절은 하느님의 이름을 깊은 마음으로 부르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 저에게로 오시어 꽃이 되십시오. 당신 말씀이 저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소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 서로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 주십시오. 오늘 복음 장면에 마리아 같이 말입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이웃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느님께도, 그럴 때 하느님께서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우리 구원의 열매를 맺는 꽃, 잊혀 지지 않는 우리의 의미가 되실 것입니다. 찬미 예수님! 임마누엘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또한 임마누엘 주님께서 당신과도 함께 찬미 예수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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