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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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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하느님의 영 안에 사는 삶인지를 알아보게 하는 시험이고 수도승의 삶의 바탕을 이루는 기초다. 겸손 없이는 하느님을 자신을 위한 하느님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겸손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 뵙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직감력을 발전시키는 조건이다. 인간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겸손해진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 하느님의 거룩하심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겸손은 하느님 체험에 대한 응답이다. 하느님의 겸손과 자기 비움으로 우리에게 오신 인간에 대한 사랑 말이다. 이 같은 한계 없으신 사랑에 배신에 대한 죄인으로 여기고 모든 이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한 노부에게 ‘겸손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겸손은 하느님의 위업이다! 겸손으로 가는 길은 이렇다.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여겨야 한다. 모든 이에게 굴복해야 한다.’ 한 수도승이 물었다. ‘모든 이에게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노부는 대답했다. ‘모든 이에게 굴복한다는 것은 다른 이의 결점에 마음을 쓰지 않고 오히려 더 자신의 결점을 관찰하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루가 18장 9-14절에 “바리사이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 예화에서 성전에 올라가 바리사이는 이렇게 기도했니다. ‘하느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나는 강탈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 따위의 다른 인간들과는 같지 않을 뿐더러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나는 한 주간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내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로 눈을 들 생각도 못하고 자기 가슴을 치며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저 사람과는 달리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사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입니다.”
가자의 도로테오 아빠스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아래로부터 영성은 드러나고 있다. 너희 추락이 너를 교육하는 선생이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이 처해 있는 실재적인 상황으로 내려오는 사람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자리잡은 심연과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의 영역으로,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무능력으로 내려오는 사람, 자신의 인간성과 땅에 밀착해 있는 본성을 대면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게 되고, 참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모든 영적 삶의 목표는 하느님께 도달하는 것이다. 플라톤에서 시작해 인간 역사 안에서 표현된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려는 모든 시도들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근원적인 그리움이다. 베네딕도 성인이 겸손을 논한 장에서 말한 아래로부터의 영성의 역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재적인 상황으로 내려와야 하느님께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 믿고 맡기며 자신의 윤리적인 성취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바리사이인은 하느님에 의해 낮아진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매우 가치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높이는 데 하느님을 이용하고 있다. 이때의 하느님은 참된 하느님이 아니라 그가 설정한 하느님이고, 그는 자신이 만든 가짜 하느님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길 수 있기 위해서도 먼저 자신이 현실적으로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대면해야만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식한 세리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자신을 모두 내맡겼기 때문에 하느님에 의해서 일으켜지고 높이 들어 올려지게 된다. 그는 자기 스스로는 더 나아질 수도 자기 자신을 보장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만이 그를 일으켜 세우실 수 있고 올바르고 정의롭게 만드실 수 있다.
우리가 베네딕도 성인이 말한 겸손의 12단계를 구약성서 야곱의 사다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12단계는 우리를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인식하도록 열어주시는 막다른 길로 인도해 간다. 그래서 야곱의 길을 방해했던 돌이 기념비로 사용되는 것같이, 이 단계들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알려주는 거룩한 제단의 돌들이 될 것이다. 12단계들은 관상으로 나아가게 하며, 내적 성장의 길,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다. 12는 전체를 지칭하는 수로서 10과 같이 각 구성원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베네딕도회명 아래로부터 영성이란 사실과 이 영성은 삶의 실재적인 상황으로 내려가는 것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겸손의 12단계는 인간이 변화되는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초기 1단계에서 4단계까지는 인간의 의지의 변화에 대하여 언급하며, 5단계에서 8단계까지는 생각과 느낌의 변화를, 9단계에서 12단계까지는 육신의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더불어 한 인간 전체가 갈 길의 막다른 지점까지 나아가서 하느님을 향해 열려져야 한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느낌, 필요한 요소, 고통과 희망사항 들이 모두 하느님께로 내놓아져야 하며, 그렇게 할 때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것이다.
변화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들을 하느님을 향해 열어놓는 것을 의미하고, 생각과 느낌들이 최종적으로는 하느님을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생각과 느낌들을 치유하는 도구는 바로 하느님의 현존 자체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시면서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 생각과 느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보고 아시는 분이시다. 하느님 면전에서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모든 그리움과 바람을 완전히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신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겸손의 첫째 단계에서 베네딕도 성인은 우리에게 하느님과 관계를 맺도록 권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관계를 상실한 것이 현대인이 안고 있는 모든 병의 주요인으로 보고 있다.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들과의 관계회복 관계를 받아들이는 겸손이 그 첫 단계다.
토마스는 기도가 단순히 하느님께 오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은 높고 인간은 낮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께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 높아지게 해줄 어떤 것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사물들을, 영혼 자체를 육신 안에서는 결코 완전하게 활동할 수 없는 영혼의 그 능력들까지도 딛고 올라가야 한다. 지금 나는 시각과 청각, 그리고 오감(의 나머지 감각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들은 영혼과 유신을 연결하고 있다. 영혼은 육신 안에서 완전히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들, 곧 사랑과 지식 안으로 물러나야 한다. 이 두 능력 안에서 영혼은 세상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 세상에 대해 죽는다.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눈(또는 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앎, 영적 앎이 필요하다.
사랑으로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손이나 발이나 다른 어떤 지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떠남으로써 오직 하느님과 단둘이서 자신의 영혼을 닫아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참된 기도이며, 오직 이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갈망을 들으시고 그의 탄원에 응답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내 안에서 홀로 당신의 신적 활동을 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떠난 곳에서 하느님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선한 의지는 결코 하느님을 잃거나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하느님께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것은 선한 의지가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의지가 무엇인지 하느님에게서 찾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의지를 포기하길 원하신다.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다는 나 자신을 비운 손으로 합장하는 하느님 손에 맡기는 겸손의 기도야말로 나 자신이란 한계성의 질그릇을 비우는 것이다. 이는 마치 비워야 담는다는 이런 선문답 실례와도 같다.
비워야 담는다. 어느 학자가 선사를 찾아 뵙고 물었습니다. “불교의 진리가 무엇입니까? “차나 한잔 드시지요.” 선사는 찻잔이 넘치게 차를 따랐습니다. “스님, 그만 하시지요. 차가 넘칩니다.” “당신은 지금 이 찻잔과도 같이 가득 채워져 있소.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하여도 넘쳐 흐를 뿐, 담겨지지 않을 것이요.”
마주 앉은 사이로 침묵이 흘렀습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고 있다. 그 능력은 약함 가운데서 완성되는 법이다. (2코린 12, 9) 나는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2코린 12, 10)
주님의 은총이 내게 항상 차고 흘러넘친다고 하신 사도 바오로야말로 자기 자신을 비운 겸손한 질그릇 같은 사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질그릇 안에 겸손한 기도생활로 성령의 은총이 내게 항상 차고 흘러넘친다는 사랑의 개선가가 영원히 메아리치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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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성탄 대축일 묵상 - 수동의 기도생활 2013.03.14 3200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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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대림 제3주일 묵상 - 골방에서 비밀로 하는 기도 2013.03.14 3532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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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연중 제 33주일 묵상 - 기도의 형태와 자세 2013.03.14 3074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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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연중 제24주일 묵상 - '이해' 더하기 '희생'은 2013.03.14 2840 김종봉 요한 신부 baramjoh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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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연중 제22주일 묵상 - 하느님의 일을 하시게.. 2013.03.14 3129 차덕희 알벨도 수녀 bert2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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