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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 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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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말씀에서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세 가지 비유는 우리 모두는 주인이 따로 계신 몸이니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서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을 네 가지 종류로 성서는 분류하고 있습니다. 주인님이 따로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언제나 주인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며 등불은 정신과 마음이 깨어 있음을 의미하니 혼인잔치에 신랑을 기다리듯이 깨어 기다리는 사람이 첫째 부류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인님이 따로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 또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지만 그대로 살지 않고 또한 애쓰지도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께 대한 더 큰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
셋째 부류는 주인님이 따로 계신 줄을 알면서도 주인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네 번째는 아예 주인님이 따로 계신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왜 오시는가? 하느님 나라 잔치 상에서 우리에게 시중들러 오시며, 겸손한 봉사와 충만한 사랑을 주시고자 오신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으로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라.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어떻게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으란 말입니까? 그 해답을 루카 복음 15장에 등장하는 기다리는 아버지와 두 아들의 비유 즉 길 잃은 탕자의 비유로 우리 함께 묵상하십시다. 이 이야기 장면에서 주인공은 탕자 작은 아들보다는 두 아들을 깨어 무한히 기다리시며 용서하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문의 주인공을 “기다리는 아버지”로 이해하고 읽으면 작은아들 못지않게 큰아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작은아들의 문제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새로이 큰 아들의 문제가 제기되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작은아들은 아버지께로 몸과 마음이 다 돌아왔지만, 큰아들은 몸만 아버지와 함께 있을 뿐 마음은 아버지를 떠나있습니다. 작은아들의 가출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까 큰아들의 가출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몸의 가출이 아니라 마음의 가출이기에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곪아가는 골치 아픈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다리는 아버지는 오래 참고 기다려서 작은아들을 되찾았으나 이제는 큰 아들이 돌아오기를 다시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큰아들은 동생의 돌아옴을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주지 못했을까?
탕자의 비유에서 형은 아버지를 실제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대가를 요구하며 종과 같이 일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아버지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가치구조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우는 깊은 죄책감으로 부서지고, 아버지로부터 떠나 소외됨으로써 정화되어 아버지를 자기 아버지로 여기게 됩니다. 아버지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하셨고 또 기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탕자는 자기 행위로 말미암아 순례자가 되고 아버지의 집과 사랑에서 떠남으로 배운 것이 무엇인지를 사막의 체험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즉 아버지로부터 떠난 결과가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자식은 유순해지고 아버지의 작은 소원도 기쁘게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식은 이제 폭군의 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자유롭게 되어 사랑을 사랑으로 갚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큰아들이 볼 때, 아버지는 불공평한 분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가출 한 적도 없고 아버지의 재산을 팔아먹는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거역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동생은 재산의 절반을 가지고 가출한 문제아(?)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는데 반해서, 재산을 다 팔아먹고 거지꼴로 돌아온 동생에게는 지난 잘못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환대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큰아들이 보기에 아버지의 이런 태도는 매우 불공평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 겉으로는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으나 안에는 용서 없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비뚤어진 당시 종교인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 시대의 종교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자기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총애를 받기에 합당한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나,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과 가르침은 그들 신앙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파격이었습니다.
여인들과 이방인, 죄인 가릴 것 없이 아무하고나 어울리는 예수, 죄에 찌든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보다 더 옳고 하느님 나라에 가깝다고 말하는, 부당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독설을 거침없이 퍼부어대는 예수를 당시 주류 종교인들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들은 평생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왔는데, 실컷 죄짓고 살다가 뒤늦게 회개한답시고 예수와 어울리는 파렴치한 사람들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들과 어울려 희희낙락하는 예수는 더더욱 용서할 수 없는 악독한 자요, 유대 공동체 신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단자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 이면에 담겨진 ‘속마음’을 보는 예수의 시각 차이는 그토록 컸고, 메우기 어려운 골이 되었습니다.
작은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왔다”는 바로 그 점, 바로 그것 때문에 아버지께서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비참한 신세였고, 그것은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비로소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처음부터 변함이 없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나 집을 떠난 후에나 아버지의 사랑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달라진 상황은 단지 아들이 선택한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 방탕한 삶을 산 것도, 그래서 괴롭고 외로웠던 것도 모두 아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만약 아들이 집에 돌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나름대로 독립하여 살아가면서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였다면 그것 또한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집을 나갔다, 집으로 돌아왔다”가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마음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점에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가톨릭 교우들은 이 비유 장면에 큰아들 같이 아버지집인 가톨릭교회를 떠나지도 않았고, 자기 방식대로 아버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자기 동생이나 남들을 구원받지 못할 인간으로 심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그들은 마음을 돌이키면 나한테 온전히 고침을 받을 것을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만이 옳고 내 동생이나 남들은 다 틀렸다는 것은 나 자신도 문제가 있다는 현실의 결과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와 같이 말입니다 . 1995년 10월 우유회사들이 벌인 고름논쟁이 떠올랐습니다. 신생 파스퇴르 유업은 “우리는 고름우유를 팔지 않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로 선발 유제품 회사들에 직격탄을 날렸고 이에 기존 유가공협회 회원사들은 “파스퇴르 우유가 고름우유임이 밝혀졌습니다.” 라는 문구로 맞받았습니다. 이런 비방광고의 난타전으로 소비자들은 우유업계 어느 쪽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하면,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잃게 되어, 깨어 기다릴 것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금년 대선을 앞둔 우리 국민들에게 정치권도 경제권도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기다릴 것도 없게 만들며,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시한폭발 가능성마저 감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주님은 오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써 깨어 기다리시는 탕자의 비유 장면에 발을 구르시며, 멀리 내다보시는 아버지 같이 등불을 켜고 우리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선택과 결단을 하십시다. 지혜서는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지혜 18,8) 성 마리아 어머니야 말로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모범이시고 표양의 원형이 되십니다.
마리아는 우선 성령이 함께하시는 처녀였습니다. 그녀는 성령에 의해 수태되었고 말씀이 그녀 안에 육화되었습니다. 며칠 뒤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갔을 때”(루가 1, 39) 그 말씀의 증거자가 되셨습니다. 마리아는 말씀을 낳고, 겸손한 봉사를 통해 세상에 그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 38)
마리아의 인간애의 승리가요, 해방가인 마니피캇은 마리아의 찬미 감사가 하늘로 들어 올려 지신 성모승천에 우리 자신의 승천인 들어 올림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으셨으니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시도다 감사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알렐루야! 너희는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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