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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 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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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변모를 이루는 관상기도(I)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체험할 수 있으며 나 자신의 변모를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는 이런 고난을 겪고 자기 영광을 누리게 되어 있지 않는가?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에게 지적하신 말씀대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변모를 체험해야만 한다. 이 결정적인 순간은 아주 단순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활의 로렌조 수사는 불란서 군대에 오랫동안 복무하고 있을 때 그런 순간을 경험했다. 백년전쟁의 노련한 군인으로 그는 무엇이 공초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잎이 하나도 없는 마른 나무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나무의 앙상한 가지들이 봄이 되면 다시 잎으로 덮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하느님의 섭리와 권능에 대한 깊은 영감”을 얻었다. 후에 그는 이 통찰에 의해 파리의 가르멜 수도원으로 곧장 갔고 그곳에서 일생 “하느님의 현존”을 실천하며 살았다. 또한 깨우침의 순간은 도덕적인 도전이나, 인간 고통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혹은 다른 성인과의 만남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자녀인 여러분, 여러분 속에 거룩한 변모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나는 또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겠습니다.(갈라 4, 19) 사도 바오로의 지적하신 이 말씀으로 그 대답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나는 내안에서 뿐만 아니라 남 안에서도 거룩한 변모의 그리스도가 형성되도록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친히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고 지적하신 말씀대로 남 안에서 거룩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받아들이는 사람 안에 거룩한 변모 그리스도는 나 안에서도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인 사랑으로 그리스도께 결합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의 인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한 그리스도와 똑같은 사람이 된다.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요한은 말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인가? 대부분의 성인들은 사도 바오로께서 이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할 수 있도록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거룩한 변모가 형성되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정화의 과정을 통하여 해산의 고통을 깨뜨려 부셔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미켈란젤로(Michelangelo)조각가가 돌들을 바라볼 때 그들 속에 갇혀 있는 주님의 형상, 성모상 천사 상을 조각하기 위해서 온갖 정성과 혼신으로 그 밖의 돌을 깨뜨려 부셔버리고 쪼아버리듯이 말이다. 그래서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시신을 가슴에 안으신 성모상 ‘피에타 상’의 불후에 명작을 남겼듯이 말이다.
거짓 자아를 버리고 참된 자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상을 위한 평화의 과정인 해산의 고통 즉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을 주고받지 않을 때 주님 거룩한 변모는 체험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 버렸습니다.(로마서 3, 23)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어느 누구나 죄인인 인간은, 회개할 때 거룩한 변모가 일어날 수 있다.
회개하는 사형수의 얼굴 모습은 하나같이 거룩하게 변모되며 눈빛만이 아니라 온몸이 빛난다. 사도 베드로의 회개의 눈물은 천국문의 열쇠로, 맺고 푸는 사죄권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많이 사랑하므로 많은 죄의 용서를 받은 막달레나는 주님께 사랑받는 여인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해하러 가던 말에서 떨어져 회개한 사도 바오로는 빛 가운데서 주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었으며, “왜 나를 박해하느냐?”는 주님 말씀으로 믿는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뵈올 수 있었던 것이다. 주님을 뵙게 해달라는 필립보에게 “나를 보았으면 하느님을 본 것이다. 눈을 뜨고 너는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나로서 보는 것에 실패했던가? 네가 십자가의 고통이 없는 부활의 영광, 저 높은 곳에서만 주님을 보려고 하는구나. 왜 살아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낮은 데, 형제들 가운데의 십자가 정도正道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보아라.” 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실 부모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 없이 부성애, 모성애를 어떻게 체험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 거룩한 변모 사랑도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 없이는 도무지 체험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주는 사랑은 어떻게 가능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이 오직 기도생활뿐이다. 관상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점차 모상과 닮은 모습으로서 그리스도와 크게 의식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관상하는 사람은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에 따라서 만들어졌음을 마음속으로 안다. 기도생활이 신앙인들에게 주는 열매는 바로 인간의 변모이다. 기도는 인간의 내면생활을 변형transformation시킬 뿐 아니라 우리의 외모까지도 아름답게 변모시키는 원천이다. 그런데 복음을 자세히 묵상하다 보면, 주님의 모습이 변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제자들이 변모했다고 봄이 옳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자들이 ‘본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감추어져 있던 주님의 본래 모습이 ‘보여진 것’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5,8)고 선언하셨다. 오랜 기도와 수행修行의 정진으로 우리의 정념情念을 정화시켜 나갈 때 우리의 육체적 감각과 정신적 기능이 영적인 감각과 영적인 정신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 중에 가장 중요한 눈과 귀가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변할 때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뵙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필립 3,21)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로 할 일은 그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현존하심에 동의하며 내 안에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성령께 자신을 열어 드리는 일이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안에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며 또 기도생활 하는가? 바오로 사도는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라고 했고, 또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에페 6,18)라고 권고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가 아니면 삶의 위로와 용기가 지혜로 우리 자신이 어떻게 변모될지 모를 현실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마치 영국의 작가 R.L.B. 스티븐슨의 현대인의 성격분열과 이중인격을 다룬 소설의 주인공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같이 말이다. 그는 어느 날 먹으면 도덕심이 없는 추악하고 잔인한 인간(하이드 씨)으로 변신하신 약을 발명한다. 선과 악의 두 성질이 한 인간에게 공존하는 것이 불행의 근원이라 생각한 박사는 그 한쪽만을 빼낸 것이다. 그러나 그 약을 복용하는 횟수가 거듭되는 동안 약을 쓰지 않아도 하이드 씨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되고, 마침내 영원히 지킬 박사로 돌아갈 수 없게 악의 화신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야말로 돈이라는 약발의 중독되어 우리는 날로 도덕심이 없는 추악하고 잔인한 하이드 인간상 같이 날로 돈이면 다 되는 흉악한 악신이 아니면 저지를 수 없는 범죄자들의 모습으로 날로 변모되는 것을 성령으로 아니면 어떻게 추방할 수 있단 말인가?
오소서. 성령이여! 우리 얼을 새롭게 하소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라. 성령의 빛 없이는 사람은 아무 것도 죄 아닌 것 없나니, 오소서. 성령이여! 성령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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