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까요 ?
여기는 세 사람의 제자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이 직접 부르신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좇으라” 마치 베드로를 부르시듯 예수님이 제자를 직접 고르시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선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요한계시록3:20)
주님께서 부르시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
부르심에 응답하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
한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한가지를 청합니다.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유대인에게 있어서 장례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유대인뿐이겠습니까 ? 유대인에게 장례의 의무는 율법연구, 성전예배, 유월절제사, 할례시행보다 더 높은 우월성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60절)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더 급한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는 복음전파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동안 복음전파의 기회는 지나가고 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인 응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을 듣고 일언대꾸 한마디 없이 믿음으로 순종함으로써 땅과, 후손의 번영과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헌신은 어떤 상태에 일어날까요 ?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되고, 더
소중할 때에 헌신이 일어납니다. 가족은 하나님이 세우신 성스런 가정의 선물로 세상의 어떤 것보다 참으로 귀합니다. 그러나 가족보다 귀한 것은
우리에게 가족을 주시고, 돌보시며, 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응답이 우리의 가슴 속에 울려 퍼지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