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상지원단

조회 수 3384 추천 수 0 댓글 0
Extra Form
작성자 안 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co.kr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찬미예수님!
복음성서 말씀에서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오르시기를 바라신 그 불이란 당신이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 하느님 나라를 하느님의 사랑이신 성령의 불타오르는 열망으로 살아갔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당신 자신이 받으실 세례는 벗을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자기 생명을 바치는 사랑의 죽음의 세례로 짓눌리는 인간적 초조함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지르려하신 불이란 그 무엇이란 말입니까?
* 이 불은 거룩한 세례 때에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오는 불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 이 불은 성령강림 때 불꽃으로 내리시던 성령을 말한다. (예루살렘의 치릴로)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 앉았다.”(사도 2,3) * 이 불은 엠마우스에서 제자들의 마음 깊은 곳을 환하게 비추시던 하느님의 말씀 바로 그것이다.(암브로시오) “길에서나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예수님이 간절히 염원했던 불에 대하여도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부연하였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느님은 이렇게 명하셨다. “제단 위에서 타는 불은 꺼지면 안 된다.”(레위 6,6)
바로 여기 당신 자신의 생명을 벗을 위하여 바치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의 성체성사 사랑의 불같이 우리 믿음에서 그 불이 이미 타 올랐으며 얼마나 좋으랴? 고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불과 인류 역사의 신화 프로메테우스의 꾀에 빠져 제우스는 맛난 살코기는 인간에게 빼앗기고 고작 뼈다귀만을 손에 쥐었습니다. 인간과 프로메테우스 둘 다 미워하게 된 제우스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에게 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도 프로메테우스가 태양 수레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줌으로써 보기 좋게 좌절되었습니다. 이토록 얄미운 프로메테우스에게 제우스가 내린 벌은,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도록 한 것입니다. 서양화가들은 프로메테우스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면서, 인류를 위해 희생된 예수님의 이미지를 그에게 덧입히곤 하였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모로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를 그렸습니다. 그림을 보면 제우스의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치고 불쌍한 죄수의 옆구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지만, 그는 인간에게 주려던 횃불만큼은 끝내 놓지 않고 있다. 예수님의 손에도 횃불이 들려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횃불 말입니다. 교부 시대부터 현대 신학에 이르기까지 ‘에로스사랑과 아가페사랑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존재했습니다. 왜냐하면 아가페는 인간을 향하여 겸손하게 내려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인 반면, 에로스는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하느님을 향하여 올라가려는 열망이요, 동경이기 때문입니다. 에로스사랑은 이미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철학이고 세속적인 개념이었던 반면, 아가페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에게 드러난 전혀 새로운 하느님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성 아우구스티노와 같은 교부는 아무 어려움 없이 이 두 가지 사랑을 솜씨 좋게 종합하고 조화시켰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로마 5,5)에, 에로스 본능적 사랑이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어주신 선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란 자신의 에로스만으로는 하느님께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내려오시어 인간의 사랑에 날개를 달아주실 때 비로소 에로스사랑과 아가페사랑이 온전히 하나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아가페사랑이신 하느님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사랑의 불씨로 이 세상에 그 불이 이미 타 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에서 태양 불 숭배사상과 관련 있었던 전설적인 새 불사조 피닉스 새와도 상징적 묵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불사조는 크기가 독수리만 했고 빛나는 주홍빛과 황금빛 깃털을 갖고 있었으며 우는 소리가 음악과도 같았다고 전해집니다. 불사조는 항상 한 마리뿐이었고 매우 오래 살았다. 고대의 문헌들은 모두 불사조의 수명을 적어도 500년 이상으로 잡고 있습니다. 불사조는 수명이 다해 가면 향기로운 가지들과 향료들로 둥지를 만들어, 거기에 불을 놓아 그 불 속에 스스로를 살랐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새로운 불사조가 기적처럼 솟아올라서, 몰약(沒藥)으로 된 알 안에서 선조의 재를 염하여 가지고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로 날아가 그곳에 있는 태양신 레아의 사원 안 제단 위에 그 재를 놓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죽어가는 불사조가 헬리오폴리스로 날아가 제단의 불에 스스로를 바치고 거기에서 새로운 불사조가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 교인들은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을 피닉스 불사조로서 상징적 묵상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 주일미사 사도신경 고백 때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하는데 내 신앙의 핵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하느님의 힘은 오직 끝까지, 다시 말해 죽기까지 사랑하는데(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는 데)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권능은 초 권능으로, 그것의 본질은 피조물들을 향해 힘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사랑으로 포기하는 것임을 믿지 않는다면, 나는 허무주의적 꿈과 허공을 치는 것과 같다는 사도 바오로의 지적 말씀을 명시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힘이 사랑의 힘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이 모든 일- 미신적 마법이건 부정적 무신론이건 -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전능을 믿는 것입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는 사람은 자기에게서는 죽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전능은 용서하는 사랑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모리악 문학사상가가 우리는 빵보다 용서하는 사랑에 더 굶주리고 있기 때문에 용서하는 사람은 꺼져가는 사랑의 불씨를 다시 불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 욕심 내가 원하고 바라며 청하는 바를 이루어 주시지 않는 그런 무능한 하느님이 내게 별 볼 일 없는 하느님으로 쉬거나 냉담해 버립니다.
신앙은 그리스도인을 그의 가장 깊은 곳에서 구속하여, 오직 사랑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랑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자유의 내적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선포하고 찬양하는 것은 부성애(父性愛)의 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잘못을 무한한 자비와 한계성 없는 용서하는 사랑으로 껴안아 받아주시는 길 잃은 탕자의 비유에 아버지의 부성애를 믿음을 매주일 우리의 신경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불을 놓으러 오신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야만 우리 자신 안에 그 불씨가 불타오를 것입니다. 성녀 말가리따 마리아 알라코크에게 내리신 계시의 중요성에 대하여 비오 교황님의 회칙에서 이렇게 지적하십니다. 그 계시의 중요성은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성심을 열어 보이시면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신비를 묵상하고 그에 대한 신심을 키우도록 매우 놀라운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시고자 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이 특별한 발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거듭 분명한 말씀으로 사람들이 당신 사랑을 알고 인정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이끌어줄 상징으로 당신의 성심을 가리키셨습니다. 동시에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심을 우리 시대의 교회가 필요로 하는 자비와 은총의 표시 또는 보증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 성심 공경이야말로 꺼져가는 우리 사랑의 불씨를 계속 불 당길 수 있는 하느님 사랑의 불씨로서 세상의 불을 놓으러 오셔서 불타는 것 밖에 더 바랄 것이 없다하신 불타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계획을 바꾸거나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모님과 성인들의 모범을 따라, 이 세상의 모든 어둠과 이기심을 물리치는 사랑의 힘과 빛을 하느님에게서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성 마리아 어머님과 모든 성인 성녀들께 꺼져가는 우리 안에 성령의 불을 당겨주시도록 도움의 은총을 청하며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불을 놓으러 오신 사랑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불을 불사르셨던 성인 성녀들께 가까이 가 본받지 않고, 나 홀로 독불장군은 나 홀로 지옥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이 세례 때 받은 성령의 불, 세례를 받아야만 사도 바오로같이 “이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성령께서 하는 것이라”고 내 안에 성령의 불이 불타오를 것입니다.
알렐루야!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나이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 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작성자
공지 가톨릭 마산교구 주보 _ 2024년 4월 28일 부활 제5주일 __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4) 2024.04.28 5 윤행도 가롤로 신부/ 월영본당 주임
258 그리스도 왕 대축일 ( 성서주간 ) 2013.03.14 4028 토머스 키팅 신부
257 연중 제33주일 - 좁은 문(루가 13,22 ~ 30) 2013.03.14 3752 토머스 키팅 신부
256 연중 제32주일 -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2013.03.14 4090 토머스 키팅 신부
255 연둥 제31주일 - 손 내밀기 (루카 19,1 ~ 10) 2013.03.14 4059 토머스 키팅 신부
254 연중 제30주일 - 겸손한 자의 기도(루카 18,9 -14) 2013.03.14 3459 오창열 사도 요한신부 ocyjohn@hanmail.net
253 연중 제29주일 ( 전교 주일 ) 2013.03.14 3703 오창열 사도 요한신부 ocyjohn@hanmail.net
252 연중 제28주일 - 감사의 생활 (루카 17,11-19 ) 2013.03.14 3812 오창열 사도 요한신부 ocyjohn@hanmail.net
251 연중 제27주일 - 믿음의 은혜 (루카17,5 ~ 10) 2013.03.14 3376 오창열 사도 요한신부 ocyjohn@hanmail.net
250 연중 제26주일 - '부자와 거지 라자로' 2013.03.14 3511 이호자 마지아 수녀 jaho264@hanmail.net
249 연중 제25주일 -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란? 2013.03.14 3584 이호자 마지아 수녀 jaho264@hanmail.net
248 연중 제24주일 - 회개하라! 2013.03.14 3301 이호자 마지아 수녀 jaho264@hanmail.net
247 연중 제23주일 - 너 자신을 버리고 .... 2013.03.14 3859 이호자 마지아 수녀 jaho264@hanmail.net
246 연중 제22주일 - 하늘나라의 보화 2013.03.14 3505 이호자 마지아 수녀 jaho264@hanmail.net
245 연중 제 21주일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2013.03.14 3406 안 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co.kr
» 연중 제 20주일 - 기도는 사랑의 열망의 불을 당긴다. 2013.03.14 3384 안 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co.kr
243 연중 제 19주일 - 깨어 기다리는 기도 2013.03.14 3176 안 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co.kr
242 연중 제 18주일 - 청원기도 생활 2013.03.14 4769 안 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co.kr
241 <창18:20-32> 아브라함의 6번 기도 2013.03.14 3943 전주희 목사 rising223@hanmail.net
240 <창18:11-10> 교회의 새 질서, 섬김 2013.03.14 3922 전주희 목사 rising223@hanmail.net
239 <신30:1-14> 돌아오라 2013.03.14 3673 전주희 목사 rising223@hanmail.net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 56 Next ›
/ 56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