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신비‘
“내가 니 밥이냐?” “내가 니 물봉이냐?” “미쳤냐? 내가 그런 짓 하게?”어려서 많이 듣던 소리다. 따지고 보면
대단히 야무지고 똑똑한 말이다. 그런데 바보처럼 끌려가 몇 천 대의 매를 쳐 맞으시고 말 한마디 않고 죽어 가시는 예수님이 바로 그 바보
아니신가? 우리의 물봉 아니신가? 참으로 예수님은 실패작이고 가장 멍청이 노릇을 한 지상 최대의 어리석은 사나이 아닌가? 그런데 그 어리석은
실패작인 예수님 앞에 웬 사람들이 모여들고 일생을 바쳐 그분의 뒤를 따른다고 꾸역꾸역 밀려오는가? 교회는 왜 그렇게도 그 분 앞을 떠나지
못하는가?
어느 날 성체 앞에 엎드려 기도드리는데 내 맘 속에 “너는 내 집에 식객이니라.” 하는 말씀이 들려왔다. 순간 ‘내가
거지야?’ ‘내가 밥 얻어먹는 거지란 말이야? ‘ 정말 놀랐지만 동시에 지당하고 지당하신 말씀임을 즉시 깨닫게 되었다.
그러네! 내가
죽치고 주님 앞에 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밤낮 얻어먹고 가니……. 내가 정말 주님 앞에 왕 거지, 단골 식객이구나! 그렇게 예수님 성체를 영하지
않으면 새 힘을 얻을 수 없기에……. 한 없이 얻어먹고 힘을 내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미사에 쫓아다니는 내 모습은 여전히 지금도 주님 앞에
식객이구나!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3/2를 주님 앞에 식객으로 쫓아다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식객이 식객임은 확실한데 계속
얻어먹기만 하는 거지 근성이 내게 있음을 지금 발견한다. ‘얻어만 먹고 퍼 주지 않으니 사해의 짠물이 아닌가? 주님께 한 없이 얻어 먹고 얼마나
많이 얻어 누리기만 한 은총인가?
성체를 영하러 나갈 때 마다 나는 ‘예수님!, 제 죄의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 찔러 흘리게 한 그 성혈을
제가 영합니다. 그 피로 저를 씻어 주소서!’ 라고 실토한다. 넘치도록 얻어먹고 마셨으니, 이제는 조금 철이 들어야 하지 않은가? 나누기를
꺼려함은 내 인색함이요, 바보가 되지 않으려 함은 더 잘나 보이려하는 어리석음이 아닌가? 제발 정신 좀 차려야겠다. ‘나눔의 신비를 네가
아느냐? 테레사야’ 스스로 자문해 본다. 나는 입으로만 머리로만 나눔을 알고 있었구나! 나를 산산이 쪼개어 나누어 줄 수가 없음은 정말 내가
주님의 나눔의 신비를 전혀 깨닫지 못한 소치가 아닌가?
며칠간 내 입에서 떠나지 않은 노래가 있다. ‘사랑은 참으로 나누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쥐면 없어지고, 쓰고 나누어 주면 풍성해져 온 땅에 가득하네!
하늘에서 내려오신 만나이신
예수님은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내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태26:26~28>고 말씀하셨다.
최후 만찬 상에서 성찬례를 제정하시면서
하신 말씀은 십자가상의 제사에서 실현되었고 옛 계약은 새 계약으로 완성되었다. 빵과 포도주 안에 당신 몸과 피를 담아주시고는 우리로 하여금 아니
온 교회가 먹고 마시게 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뭇 민족들 가운데 곳곳에서 주님의 이름 드높고, 향과 정결한
제물이 주님께 받쳐지고 있나이다.’<말라1:11>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다.
매일 매시간 이 지구상 곳곳에서 재현되는
십자가상의 제사는 끊임없이 당신의 성체성혈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놓으신다.
주님!, 끊임없이 퍼 주시고 계시는 당신의 살과 피는 온
누리를 새롭게 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기 위해 온 인류 앞에 바보가 되시고 밥이 되어주신 주님 덕분에 우리들은 풍요로워지고
한 덩어리가 되어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밥이 되어 주신 당신의 한없는 내어 주심은 이 지구를 따뜻하고 평화로운 지상의 교회로부터 천상교회로
연결시켜 주고 계시나이다.
예수 수난, 부활의 신비와 삼위일체의 신비와 그리고 성체성혈의 신비가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이 3대 신비가
성교회의 신비요, 영원하신 하느님의 현현이 아니신가! 이 위대한 신비 안에 사는 우리는 얼마나 복된고!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다.’ <요한6:5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