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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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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오늘 복음 성서 말씀 장면은 바다 물 위를 걸어서라도 우리에게 달려오시는 주님을 우리교회 으뜸 사도 베드로가 맞이하는 신앙의 자세가 바로 바로 우리 자신의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너라.’ 분부하시자 바다물 위로 뛰어드는 투신의 신아이었으나 파도가 치는 것을 보자 의심이 생겨서 가라앉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약하다는 지적을 하시며, 당신과 함께 하는 큰 믿음은 바다도 잠잠하게 대자연도 극복하시는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사도 베드로가 결론 매듭을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체험은 늘 편안하고 안주하는데서 체험되는 것이 아니라 거센 파도, 격랑激浪의 소용돌이치는 와중에서도 우리에게 해결사로 오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힘내시오. 나요. 무서워하지 마시오.’ ‘나 야훼는 너희 백성을 위한 나다.’ 하느님께서는 예수에게서 자기 자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고 홍해를 안전하게 건너게 하신 하느님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알아보자 즉시 용기를 냅니다. 그는 예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고 배를 떠나 물 위를 걷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배는 우리가 떠나야 하는 자아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자아가 무의식에 의해 정신없이 흔들리면, 우리는 자신의 편협함을 깨고 나와야 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경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배는 공동체의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공동체가 우리를 구할 것이라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때는 스스로 공동체를 떠나 신뢰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한, 베드로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삶의 불안 한가운데서 우리를 구합니다. 하지만 거센 풍랑을 보자마자 베드로는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문제만 보면, 높은 파도만 보면 우리는 물속에 빠집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베드로는 비명을 지릅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기도생활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 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 하였느냐?’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주님의 지적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믿지만 믿음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약한 믿음은 폭풍우와 풍랑에 시달릴 때 쉽게 의심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삶의 한 밤중에 우리를 위협하는 폭풍우 한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신뢰하고, 믿음 안에서 그분에 의해 강해진다면, 우리 믿음은 산을 옮길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존재와 삶을 지탱하는 근거를 잃어도, 사람들이 우리를 떠나도, 가진 것을 잃어도,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는 지탱하고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인간에게서 좋은 것을 보는 것, 세상에서 좋은 것을 인식하는 것,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좋은(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사물을 좋은(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 모든 것에서 좋은 것(긍정적인 면)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면에서 하느님을 보는 것, 인간의 얼굴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좋은 것(善)의 근원이시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 예시다는 것을 믿어야만 나는 좋은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선(좋은 것)을 믿는다면, 나는 그가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대신에 좋은(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도와 줄 수 있다.”(안셀름 그륀,《믿음》, 성서와 함께:2004.15-16).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륀 신부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산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무장한다면, 그 산은 저절로 무너질 것이고 문제는 갑자기 작아질 것이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만 마음과 시선을 고정시켰더라면 물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 위라는 문제는 예수님께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믿음은 문제를 문제로 보게 하지 않고 성장과 단련, 배움과 도약의 기회로 바라보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높은 산으로 옮겨주어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하고, 믿음은 우리를 물 위를 건너게 하여 마침내 예수님 품에 안기게 합니다. 산도 물도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다.(마태 17, 19-21)
요한 복음사가께서도 ‘너희가 믿음만 있다면 내가 베푼 기적보다도 훨씬 더 큰 기적을 베풀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올림픽 경기가 한창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에 가 보신 분들은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북경 서북부 교외에 있는 이화원이라는 큰 공원에 청나라 때에 서태후가 만든 여름 별궁으로 총면적 267ha.로 항주의 서호를 본따서 만든 인공호수와 그 파낸 흙으로 만든 북부의 인공 산 만수산을 바라보노라면 방금 말씀드린 성서 말씀, 이 산더러 여기서 저리로 옮겨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라는 믿음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청시대의 절대권력 서태후가 인공 호수를 파낸 흙으로 여기서 저기로 산을 옮겨 가라는 인간의 믿음에 한계와 도전의 역사를 보면서 말입니다. 태산이 높다하여도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뫼만, 산만 높다 하더라는 시 구절이 절로 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병들었을 때, 의사가 내 병을 고친다는 믿음이 있으면 병의 치유가 이루어지듯이 또한 어떤 인간들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내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이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있으면 나보다 더 큰 힘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기적이 내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관건은 예수님께서 항상 지적하신 우리 자신의 믿음, 네 믿음이 크냐 작으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신 것을 융은 베드로가 자아를 떠나 자기(Self=참 나 - 역자 주)에 도달한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자기는 인격persona의 중심입니다. 자기 안에 하느님께서 이미 현존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에야 우리는 자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에 도달하면, 그리스도를 우리 배 안에 모시면, 바람이 멎고, 불안은 사라지며, 우리 마음은 평온해집니다.
교회를 떠난 지 오래되었고 하느님과 무관하게 살고 싶었던 어떤 고위 관리자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그립지는 않았지만 끔찍한 불안에 시달렸다고! 어떤 아는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불안 때문에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 겁니다.” 이 관리자는 불안한 가운데 며칠 동안 시간을 내서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개방할 정도로 시편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 그는 안정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에게는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의 의미가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 내 배에 오르시면, 나는 평온해지고, 내 삶은 변모되며, 내 인생의 풍랑과 파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외적으로 불안정한 상황 한가운데서 평화를 체험할 것입니다.
“불만 없는 불안, 무한경쟁의 격랑을 파고 소용돌이 속에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언제나 항상 불안하고 찹찹하나이다.” 는 성 아오스딩의 고백뿐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적은 믿음 신뢰상실의 파도에 휩쓸려 이 정권의 배가 침몰 위기에 직면하며 주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에게 “오너라” 하시면서 바닷물 위를 걸어 가야하는 경제 위기에 처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을 저술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했습니다. 사회나 경제시장에서 서로 간에 신뢰가 형성되어야 거래비용과 분쟁이 줄어들어 저비용-고효율 경제가 가능해진다는 논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뢰의 붕괴는 비즈니스의 생존기반을 흔들리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라는 뜻도 됩니다.
공자님께서도 자기 제자인 공문 심철중 자공이 정치에 대한 문답에 내용에서 하루는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가를 묻자, 공자는 “양식이 넉넉하고(足食) 병력이 넉넉하면(足兵) 백성이 신뢰하는 것(民信之矣)” 이라고 답했습니다. 즉, 첫째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요, 둘째는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 셋째는 믿음과 신뢰를 말한 것입니다.
그중에서 부득이 두 가지 모두를 배야 한다면 하고 자공이 묻지 공자는 병을 없애라. 식을 없애라. 그러나 백성에게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믿음 신뢰가 없으며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관계도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서로 진실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닦아 나아가는 덕행인 것입니다.
신뢰를 구축하는 데는 기업이나 국가나 어느 조직이든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특히 옛날에는 입소문이었지만 요즘은 개방성을 기초로 수많은 개인과 조직 간의 관계를 조성하는 인터넷이라는 빠른 정보 전달 수단이 있기 때문에 더욱 유지하기 힘든 것이 신뢰입니다.
알렐루야!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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