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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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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사색의 계절, 독서의 계절 하던 이 초가을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복음 성서 말씀 장면은 어떤 부자 청년이 달려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는 계명을 알고 있지 않느냐? 반문하시자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고 그 청년은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자청년은 이 세상에서 재산을 가졌다는 자부심과 그 모든 계명을 다 지키고 한다는 자부심으로 이 세상에 보물만 쌓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차지하게 될 새로운 보물과 재산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새로운 우정과 재산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마르코는 예수가 온전한 인격으로 만나는 젊은이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를 추종하는 제자들이 얽매여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내적으로 자유롭게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재화에 대한 예수의 기본 입장을 듣고 깜짝 놀라자, 예수께서는 또 다른 길을 알려 주십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자의 마음에 가까이 가실 수 있고 또한 하느님 나라를 향해 마음을 열게 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재화에 얽매여 있는 사람일지라도 뜻밖의 체험을 통해 한번쯤은 그 얽매임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한번쯤 그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자기 삶의 목적이 재산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부유하게 되는 것은 그 재물을 하느님의 뜻대로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만 쌓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사색의 가을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요, 왜 사는가의 인간의 답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자와 예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그러나 경제 성장률은 국내 총생산의 증가에 온통 전신과 마음까지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 자화상이 바로 오늘 복음 성서 장면의 부자 청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백수 300만 시대에 말입니다.
오히려 국내총생산이 증가해도 개인의 행복은 전혀 증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1974년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지난 50년 동안 선진국에서 국내총생산은 상승했지만 평균적 행복감이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의 ‘세계가치조사’를 보면, 각국의 구내총생산과 삶의 만족감의 관계는 지금 우리 수준인 1만 5천 달러를 넘으면 ‘수확체감’을 보이며 사실상 행복은 소득과 거의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의 행복지수 측정은 경제를 크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2009년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산출한 행복지수에서 1위를 차지한 코스타리카는 1인당 국민소득이 6580달러에 불과하지만 생태적 수준과 주관적 행복감이 매우 높았습니다.
아시아의 부탄이나 쿠바의 행복 지수도 매우 높은 것은 국민 총 행복량을 제창한 사회복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오늘 복음 말씀에 따른 현실 결과인 것입니다.
“산업국가”, “토건국가”를 답습해 온 우리에게 일본의 현재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요 몇 년 계속된 성장 속에서 과연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졌는가. 이제 성장이 윤택한 삶을 가져다준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 동력의 발굴이 곧 생활을 향상시켜 주는게 아니라면, 생활 향상을 성장 동력으로 삶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정부와 정치가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결국 정부의 공공정책은 비물질적 가치도 중시하면서 국민의 행복수준을 향상시키는 방향을 추구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정부의 공공정책은 ‘국내총생산’ 대신 ‘국민행복수준’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돈은 우리가 추구하는 선이 아니다.” 왜냐하면 “돈이 기여하는 유일한 목적은 무언가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비교라는 단어는 비교 경쟁의 의미만 남았고 비교성숙의 의미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남과 성적을 비교하고, 대학 간판, 명함, 재산으로 비교하는, 에리히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말한 ‘소유’로 남과 비교경쟁 할 뿐, 어제보다 더 성숙한 오늘의 존재, 오늘보다 더 성숙한 내일의 관계를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교경쟁에만 익숙해짐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조차 내가 아닌 남에게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행복과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과 재산의 비교 경쟁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은 비교 경쟁만 남아서 나의 불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삶의 목적은 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 인간같이 말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인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인인 당신이 불행하고 괴로우면 나도 아픈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이처럼 지극히 단순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말합니다. 사람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악을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 우리의 자유에 맡겨진 짧은 순간이라고.
창조의 의미는 사랑이 사랑에 응답하는 데 있습니다. 두 개의 자유가 서로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서로를 사랑하는 절정絶頂이 없다면, 모든 창조는 무의미합니다.
오늘 복음 성서 말씀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네가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얻으려면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얻으려고 네가 가진 것, 자기 예속으로부터 재물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영원한 생명과 사랑에 모험, 그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자 청년은 자기 예속으로부터 탈출 못하는 물질만능의 노예의 무력함으로 주님을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물질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서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하느님 나라 사는 행복의 모험과 도전으로 향하여 나아가야만 행복도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드럽게 대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에 열린 자세를 갖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서울주보 난에 “도깨비 방망이가 울고 있네요.”란 내용을 우리 같이 묵상 하십시다. 어느 집 안마당에 도깨비들이 모여서 한바탕 도깨비 놀이를 밤새도록 한판을 벌렸답니다. 도깨비 방망이로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들이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하면 은들이 쏟아져 나오고 돈 나와라 하면 돈 벼락이 쏟아져 나오고 그야말로 전능한 신 같이 전능의 도깨비 방망이였다는 것입니다. 날이 훤하게 동터오는 새벽이 되자 도깨비들은 부리나케 줄행랑을 치고 동네 사람들은 모여와서 저마다 그 집안마당에 가득 찬 금 ,은 돈 보물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만 가지고 갔지, 정작 그 모든 것들을 나오게 한 그 도깨비 방망이는 가시 돋친 쓸모없는 것으로 발길로 짓밟고 내동댕이쳐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도깨비 방망이는 울면서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준 것인데, 나를 버리고 떠나가 버리네요.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 성서 말씀 장면에서 그 부자청년에게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은 다 내가 준 것이다. 그러니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 바로 나 자신을 가지기 위하여 하늘에 보화를 쌓기 위하여 가서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나 그 부자 청년은 자기가 가진 것만을 가지고 방금 말씀 드린 도깨비 방망이 같으신 예수님을 가지지 않고 돈 때문에 울상이 되어 예수님을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군인주일입니다. 지난 9월 28일에 2009년도 주교회의 복음화 위원회 심포지엄에서 박영대씨 주제 강연 중 한국 사회에서는 30대, 40대에서 무종교가 증가하고 젊은 층이 줄어들면서 종교인구가 고령화 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안으로서 우리 군인사목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군대사회란 우리 젊은이들이 최초로 사회 공동체와 나라와 백성 남들을 위한 봉사 사랑을 최초로 체험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이제까지 가정과 학교에서 자기중심적으로만 살아가는 경쟁력 삶에서 우리사회 공동체와 다른 사람을 위한 삶으로 살아 나아가면서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라는 신앙적 질문에 우리 천주교회 군 사목을 통하여 그 대답을 주고 이제까지 체험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군 생활 중에 체험하게 해주는 군사목이야말로 우리 젊은이들의 신앙생활에 뿌리박게 하는 것입니다.
남성들의 세계에서 군 생활의 추억과 기억은 일평생동안 가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군대생활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함께 말입니다.
오늘 주일 복음 말씀에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렇다면 우리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중에도 부자 청년과 같은 결단을 하고 당연히 예수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니냐고 이야기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내 재산을 포기해야 하고 또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면 그럴 사람이 있겠는가 회의하며, 부자 청년의 입장에 설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부자 청년의 결정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면 재산 문제가 생길 때 부모와 형제보다는 재산을 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입니다. 돈이 하느님과 사람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시대의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인간의 가치는 점점 더 땅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주일 복음은 부자 청년 이야기를 통해서 그 어떤 것보다도 하느님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사람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명확히 깨닫고 그것을 우리 아들과 형제들에게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가르쳐 주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삶의 여러 각도에서 돈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와 사랑과 정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우리 아들과 형제들은 하느님과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는 밝을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시기, 자기의 삶과 가족,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시기, 그리고 편안한 집을 떠나 경험하는 낯선 생활 속에 정신과 육체가 지치고 힘들어지는 시기에 있는 군 장병들에게 그리고 이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군종사제들에게 여러분께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사는 행복을 체험하는 성가정이 되십시다. 여러분 자신들은 오늘 복음 성서 장면에 그 부자청년 같이 돈 때문에 울상이 되어 예수님을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쉬는 교우(냉담교우)들이 되어 있는 그들에게 오늘 도깨비 방망이 같이 더 많은 물질과 사랑을 주시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울고 계시네요!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 좋은 것뿐이리라. 알렐루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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