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상지원단

2013.03.14 23:58

주님 세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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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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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심기도는 성서에 마리아의 좋은 몫 같지만

마르타의 행위도 영적인 행위가 된다.


필요한 한 가지, 곧 하느님이 우리를 껴안을 때, 모든 것이 하나가 되고, 우리의 행위는 기도가 되며, 우리의 기도는 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를 껴안은 하느님은 자비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비로운 행위는 자비로운 하느님을 가까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우리는 엑카르트가 주해하고 있는 루가 복음 10장 38-42절이 자비에 관한 두 이야기 뒤에 이어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는 큰 계명에 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자비로운 사람의 본보기로 제시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다. 엑카르트는 마르타/마리아 이야기가 자비를 가르치는 교훈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대의 한 주석학자는 마르타/마리아 이야기를 이렇게 주해한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루카는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을 설명하고 나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한다.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들과 달리, 마르타는 예수를 자기 집에 손님으로 모셔 들였다.”

한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故 전 미카엘 신부님의 마르타의 역할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故 전 신부는 “일해야 할 때 하느님을 섬기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일하는 것이다. 일하는 대신 기도해서는 안 된다.”며 본당 사목의 경험을 들려준다. 여덟 식구의 가장이 실직했다. 그는 직장을 구하는 대신 미사참례와 성체조배만 했다. 어느 날 전 신부가 물었다. “직장 구하는 책임을 하느님께 인계하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자신있게 “네 그렇고 말구요. 하느님께 다 맡겼습니다.” 전 신부는 그를 두고 “비극 속에 살고 있다”며, 이 경우 기도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들이키는 막걸리와 다름없다고 하였다. 전 신부에게 있어서 기도는 언제나 구체적이었다.

그에게 있어 모든 인간은 모두 하느님의 아들, 딸로서 소중한 존재였다. 그에 대해 증언해주는 이들은 거의 모두 ‘인간존엄’, ‘인권’이 전 신부의 생각과 행동을 풀어갈 수 있는 열쇠라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 미카엘 신부는 자신이 가장 존경한다는 초대교회 교부 이레네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인용하곤 했다. “하느님의 영광은 미사참례, 성체강복 참례, 성체조배를 열심 있게 기구하는 것이라 생각할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자녀들이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알찬 생활, 즉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은 인간을 저주하든가 규탄하며 감옥에 가두기 위하여 강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인간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추진하는 것입니다.” 전 신부는 인간이 현세에 행복하게 잘 사는 것 또한 하느님께 영광이 된다는 이레네오 성인의 생각을 곰곰이 생각하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인간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육지본토와 떨어진 두 섬이 있다. 한 섬에서는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재래방식대로 섬 생활과 농사와 어업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 섬 신부님은 수확철에 감사기도로 논과 바다에 성수를 뿌리며 하느님이 주시는 대로 비록 가난해도 감사한다고 기도 바치는 것이었다.

한편 그 옆에 다른 섬에서는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인간의 머리와 능력으로 육지본토와 큰 다리를 놓아 그 섬을 발전시켜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었던 것이다. 다리 축성식에서 그곳 신부님은 ‘하느님! 우리 인간에게 머리와 능력을 주시어 이 다리를 만들어 주시어 섬사람의 운명을 개척하게 하신 우리 인간의 능력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인간을 통하여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시니 감사합니다.’고 기도를 바친 것이다.

어느 섬사람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보다 더 크게 드러내게 한 것입니까?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이란 우리 동양사상이 있다. 마리아의 가장 필요하고 요긴한 단 한 가지보다 더 좋은 몫은 마치 중심에 붙잡고 있는 실의 추가 외곽에서 마르타같이 여러 가지로 분주다사 하지만, 그 중심에 마리아야말로 그 전부를 붙잡고 있듯이 상관한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온 인류의 죄와 벌, 화해의 십자가를 지고 이 땅에 평화로 오시는 주님은 골고타 언덕, 그런 희생과 죽음의 현장이 바로 성체성사와 기도, 전례와 영성의 고향이다. 십자가의 자리와 거리를 두고 성당의 담장 안에서만 읊조리는 기도는 한낱 죽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이 세례를 청하러 왔을 때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했다는 것을 행실로서 보여라!”(마태오 3,7) 했던 세례자 요한의 질타, 왕과 벼슬아치들의 위선을 엄하게 꾸짖던 예수님의 책망과(마태오 23장), 특히 성전을 정화하시던 예수님의 분노와 슬픔이 오늘날 어디를 향해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높은 담장의 보호 속에 안주하는 순간, 사목자는 하느님의 길에서 멀어지고 만다. 아직 하느님을 알지도 못했던 히브리 노예들이 신음하고 절규하자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고 과감하게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의 길’(탈출기 3,7-8참조)을 ‘인간의 길’로 특히 사목자의 길로 삼아야 한다. 백성들의 고난과 울부짖음보다 더 순수한 민심은 없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격언에는 고통 받는 자들의 하소연을 듣고 더불어 애통해하신 하느님의 연민(compassion)이 담겨있다. 때문에 피조물과 백성이 울부짖는 곳이라면 거기가 바로 종교의 거처가 되어야 한다. 전문가의 영역을 운운함으로써 판단을 유보하는 핑계를 지어내고 결과적으로 엉거주춤한 중립지대로 피하는 태도는 신중할지언정 사랑의 자세가 아니다. 일찌감치 종교권력의 이와 같은 일반적인 양태를 내다보신 예수님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레위와 사제가 못 본 척 하더라” 하셨다.(루카 10,30-32 참조) 우리는 입으로만 사랑을 가르칠 뿐 정작 교회는 약자들의 절망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유익을 돌보는 교회의 이중적인 처신에 너무나 시달려왔다.

성서에서 주님을 모시는 마르타는 마리아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삶의 현장에서 바쁜 것이다. 향심 기도 하시는 분들이 주님과 함께하고 그 주님을 이 세상 삶에서 마르타같이 증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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