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상지원단

조회 수 4056 추천 수 0 댓글 0
Extra Form
작성자 강영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요한 복음서를 보면 세례자 요한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공관 복음서보다 적게 실려있다. 가령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라든가, 그가 마캐루스 감옥에 갇혀 있다가 헤로데왕에게 처형당한 이야기, 혹은 물로 세례를 베풀면서 하느님의 심판에 대비하여 회개하라고 외친 이야기, 그리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던 예언자로서의 면모 등 공관 복음서 안에 실려 있는 세례자 요한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요한 복음서에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다만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자에 불과하다는 점만을 거듭 강조한다(1,20:3,28). 세례자 요한은 '빛'이 아니라, 다만 빛을 증언하러 왔을 뿐이다(1,8). 또한 세례자 요한도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1,20). 그 말은 역으로 당시 사람들 중에 세례자 요한의 활동을 보면서 그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요한 복음서의 문맥을 통해 당시 세례자 요한을 따르던 종파와 예수를 추종하던 종파 사이에 일련의 알력 관계가 있었음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구약의 전승을 문화적 배경으로 지녔던 당시 사람들은 재림할 '엘리야'(말라3,1)와 오시기로 약속된 '그 예언자'(신명 18,15)가 구원의 시대에 등장할 메시아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등장하여 세례운동을 일으키면서 회개하라고 외치자, 사람들은 그가 바로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하였고 이에 세례자 요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리하여 세례자 요한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신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요한을 추종하는 제자단과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단들 사이에는 누가 더 크신 분인지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던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보다 한 단계 낮은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예언자도 아니며, "주님의 길을 바르게 하라고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의 소리"라고 말한다. 부르짖는 이의 소리는 곧 '증언하는 자'라는 뜻이다. 세례자 요한이 베풀었던 물의 세례도 그리스도교 전승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 의미가 약화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령의 세례가 더 큰 의미로 부각되었다. 그의 세례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을 알려주기 위해 수행되는 단지 '물의 세례'일 뿐이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세례보다는 자신이 증언해야만 하는 분의 인격에 집중되어 있다. 요한 복음서는 첫 서두에서부터 예수님의 정체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밝히면서, 그분은 우주 창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신 분이라고 선언한다. 예수님은 비록 세례자 요한보다 뒤에 오셨지만, 훨씬 더 크신 분이고, 세례자 요한보다 먼저 계신 분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를 향해 스스로를 낮추었다는 겸양의 자세만을 찬양하기보다는 당시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메시아에 대한 열망을 읽어내야 하겠고, 그러한 열망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고백을 들어야 하겠다.

"이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이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 그것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미덕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 고백 속에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외치면서, 세례를 통해 누구나 하느님의 구원에 다가갈 수 있다고 선포했던 세례자 요한의 열정적인 삶과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의 해방운동의 물결이 담겨 있다. 그 고백 속에는 세례를 통한 해방운동을 넘어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하나되어 살았던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대한 회상이 들어 있고, 예수님의 죽음이 바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신앙의 이해가 들어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이 인류의 죄를 대신한 대속적인 죽음이었고 해방절 양으로서의 희생제물이었다는 해석과 더불어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신앙 언어가 발생할 수 있었다.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을 만나기까지 물의 세례를 베풀면서 당시 사람들의 갈망을 채워 주었고, 마침내 성령의 머무심을 목격하자 "과연 나는 보았고 그래서 '이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증언"하였던 세례자 요한, 그는 진정으로 부르짖는 이의 모습과 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강영옥, <뜻으로 본 복음> 중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작성자
1097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file 2013.05.12 4245 토머스 키팅 신부 / 이청준 옮김
1096 사순 제3주일 2013.03.15 4238 성공회 변승철 요한 신부 yuleum@hanmail.net
1095 연중 제17주일 2013.07.27 4230 윤영중 필립보 신부<philipus9910@hanmail.net>
1094 국제 관상지원단 사명 선언문(1항~ 11항, 마지막 회) 2013.03.14 4222 한국관상지원단 koreacontout@gmail.com
1093 사순 제4주일 2013.03.15 4214 성공회 변승철 요한 신부 yuleum@hanmail.net
1092 예수 부활 대축일 2013.03.30 4125 성공회 변승철 요한 신부 yuleum@hanmail.net
1091 주님 세례 축일 - 순종과 겸손 2013.03.14 4118 한국관상지원단
1090 연중 제25주일(루카 16,1-13) 2013.09.21 4116 윤행도 가롤로 신부 <munyman61@hanmail.net>
1089 사순 제3주일-성전 정화사건 2013.03.14 4113 안충석 루까 신부
1088 사순 제1주일 2013.03.15 4099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1087 연중 제32주일 -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2013.03.14 4090 토머스 키팅 신부
1086 연중 제24주일(루카 15,1-32) 2013.09.14 4068 윤행도 가롤로 신부 <munyman61@hanmail.net>
1085 연중 제2주일 2013.03.14 4066 윤행도 가를로 신부 munyman61@hanmail.net
1084 사순 제2주일 2013.03.15 4064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1083 연둥 제31주일 - 손 내밀기 (루카 19,1 ~ 10) 2013.03.14 4056 토머스 키팅 신부
» 연중 2주간-부르짖는 이의 소리 2013.03.14 4056 강영옥
1081 연중 제22주일(루카 14,1. 7-14) 2013.08.31 4054 윤행도 가롤로 신부 <munyman61@hanmail.net>
1080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2013.04.07 4032 예수랑 교회 전주희 목사 truth <rising223@hanmail.net>
1079 11월 2일 - 위령의 날 2013.03.14 4029 오창열 사도요한 신부 ocyjohn@hanmail.net
1078 그리스도 왕 대축일 ( 성서주간 ) 2013.03.14 4028 토머스 키팅 신부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56 Next ›
/ 56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