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일 복음도 지난주에 이어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기도의 중요한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하여 묵상해 봅시다.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간 이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였다."
우리도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일터로 돌아갈 때 기도의 은혜를 입고 평상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예를 들면,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예수님을 모시고 일상의 삶에서 주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기도중의 가장 큰 기도인 미사성제를 수없이 참여하고 귀가 따갑도록 말씀을 듣고, 보고, 성체를 맛보고
먹고 마시지만, 내가 의화(성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내 옆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가?
나도 내가 미사의 전례적인 기도로 성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자신하는가?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는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자세로
미사성제에 참여 할 것을 권고한지가 4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오늘 우리가 보는 교회공동체는 이와는 거리가 멀고, 신자 대중은 습관, 형식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현상인데, 나도 그러한가를 깊이 성찰 해 봐야 하겠다.
또 하나 기도의 자세중의 중요한 요소는
겸손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이의 기도는 "구름에 까지 올라가 그분께 도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내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예수 중심의 삶" 이 될 때 그분의 성령이 나를
의화시켜는 것를 인정하고 의탁하는 믿음과 겸손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다고 오늘의 복음은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살다가 보면 나도 바리사이의 기도도 많이 드린 것이 사실입니다.
조금 내가 기도생활을 했다고, 그리고 사제생활을
오래했다는 자부심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가 가장 싫어한 바리사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 때의 징표는 기도가 기쁘지 않다는 것, 의무적인 면이 많이 강조되어 가고 있는 것, 너무나 많은 분심, 잡념
속에서 헤매다가 기도가 끝나는 것, 점차적으로 내 심령이 메말라 가고 있음을 느끼고, 내 안에서 기도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감지하기가 매우 드문
것...등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그럴 때에 주님과 깊이 만날 수 있는 피정과 말씀을 통하여 "앵무새가 노래를 되찾듯이" 기도의
샘으로 돌아가곤 했다.
5년 전에는 관상기도에 맛 드리는 기도로 주님이신 성령께서 초대해 주셨다.
향심( 向心)기도를
통하여 .......,
한결같은 사랑으로 부르시고, 기다리시는 주님이 당신과 함께 살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어떤 뜻이 있어서 당신과
친밀하고 깊은 기도에로 적극적으로 초대하시는 그분의 뜻이 무엇일까?
오늘도 눈을 감고, 성령의 도움에 의탁하면서, 주님의 본체와
나의 실체가 만나는 이 시간은 얼마나 감미롭고 좋은지...
이런 기도의 성찬에로 초대해 주신 주님은 내 삶을 통해서 영광
받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