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상지원단

2013.03.14 22:14

연중 제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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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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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짧은 추석연휴 마지막 날을 지내며 로사리오 매괴 선교성월을 맞이하는 지난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복음 성서 말씀 장면은 겉으로 보기에는 혼인과 이혼 가정사의 문제로 이해 될 수도 있으나 좀 더 나아가서 사회적인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단지 이스라엘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극단적인 약자에 대한 언급할 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약자들이 곧 하느님 나라의 주인임을 선포하신다는 것입니다.
작은 가정에서부터 큰 국가에 이르기까지 그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영성은 가장 작고 약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라는 것이 오늘의 독서와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언사는 그 사회적 차원의 메시지를 신앙적-신학적 차원의 메시지로 상승시킵니다. 그것이 한 가정이든 아니면 한 국가이든 그곳에서 약하고 소외된 이들이 보호받지 못할 때, 그곳에 내려진 하느님의 축복은 훼손되는 것이며, 그것은 곧 하느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두렵고 떨리는 예수의 선언이 오늘의 교회에 이렇게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남녀의 결혼은 도자기라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도자기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제품이고 조금도 더 좋아질 수 있는 무엇이 아니며, 따라서 금이 가거나 하면 비록 풀로 붙이더라도 가치가 반감하는 그런 물건입니다. 결혼은 삶에 해당하고 따라서 삶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그럼 삶은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삶이란 유리장 속에 고이 모셔놓고 부딪치거나 변색하거나 외부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게 잘 보존할 무엇이 아닙니다. 삶은 끊임없는 상실로 이루어집니다. 그 상실을 우리 유기체는 날마다 복원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침범하면 즉각적으로 대처하고 또 예방하고 유기체에서 퇴치합니다. 적어도 몸이 건강한 동안은 그렇게 합니다. 결혼은 바로 이런 생명의 법칙을 반영해야 합니다.
오늘날 결혼이라는 것은 “쓰다가 버리는” 소비주의의 사고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자기기나 연장이 고장 나거나 흠집이 나타나면 고칠 생각을 않고(그런 수리작업을 해 주던 작업은 사라져가는 중입니다.) 당장 새것으로 갈아치울 생각부터 합니다. 멋진 신제품을 바라는 것입니다. 결혼에까지 이런 사고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은 해도 너무한 것입니다.
부부생활의 터진 데를 수선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는 이 점을 두고 아주 훌륭한 충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에페 4, 26-27)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하십시오.”(골로 3, 13)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갈라 6,2) 나쁜 버릇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쁜 버릇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습관을 몸에 배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미워하는 것을 그만두는 일이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좋은 점을 사랑하면 미움은 없어지고 오히려 기쁨까지 생기는 법이 아니던가? 윤학씨의 ‘잃어버린 신발’에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중요한 점은 찢어지고, 기우고, 위기를 겪고 극복하는 가운데 결혼이 시들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세련된다는 사실입니다. 끓고 부글거려도 술이 오래 묵을수록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값이 올라가는 것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임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매일 아침, 아니 매순간 우리 삶이 다시 시작하듯이, 결혼도 매순간 다시 시작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갖가지 시련과 위기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둘이 서로 원해서 매순간 다시 출발하고, 과거를 덮고서 새로운 역사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정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신 생애의 첫 번 기적을 하신 곳은 갈릴래아의 가나 촌이었다는(술이 떨어져) 것입니다. 신랑신부의 행복한 잔치가 파탄나지 않기 위해서 기적을 하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맨 마지막으로 나온 그 술이 잔치 상에서 제일 좋은 포도주였다고 한입으로 말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기 결혼잔치에 초대한다면, 오셔서 그런 기적을 해 주십사 부탁드린다면, 맨 마지막으로 마신 포도주 곧 수년의 세월이 흐르고 성숙하고 노경에 든 사랑과 결합이 신혼초의 사랑과 결합보다 훨씬 훌륭하고 맛스럽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어떤 점 때문에 그들이 하늘나라, 즉 낙원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하는가? 아마도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은 하느님의 질서, 즉 창조질서 앞에 순응하는 모습, 아직 관계가 깨어지는 경험을 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신뢰가 회복되고, ‘나’와 ‘너’가 맺은 관계가 늘 기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온전한 관계일 때, 그 관계 안에서 인간은 나이에 관계없이 어린이의 유치함을 창피해하지 않고, 아무 감출 것이 없는 벌거벗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말씀은 우리를 어린이의 건강한 유치함과 전적인 신뢰로 돌아오라고 초대합니다. 돌같이 굳어진 늙은 마음을 풀어 녹여서 말랑하고 탄력 있는 심장으로 사랑하라고 초대합니다.
어느 작가에게 결혼 1년차 여 제자가 보낸 밑도 끝도 없는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한 줄 날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사랑의 끝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한참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며 그 문장 뒤에서 울고 있을 젊은 새댁의 눈물을 떠올렸다는 것입니다.
신혼시절에 사랑의 끝에 무엇이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던가? 사랑을 혼인성사 미사 성찬이므로 무릎을 꿇고 받아야하고,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의 입술과 마음속에는 ‘주여, 우리는 당신과 같이 완전하고 높은 자가 아니오라. 라는 말이 울려야 할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문장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지난날의 사랑이 마치 촛불까지 소진해 버리고 어찌 보면 아내, 자식들은 촛농처럼 남는 것이 아닌가? 헛헛하고 쓸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작가는 한참의 시간을 보낸 뒤 결국은 다분히 의례적인 답장을 보냈습니다. ‘나도 끝까지 안 가봐서 사랑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사랑이란 꿈꾸면서 가는 과정에 불과한 게 아닐까.’ 참으로 범속하고 비겁한, 자기합리화적인 대답이어서 나는 더욱 우울해졌습니다. 제자도 내 대답에 실망했는지 ‘사랑의 끝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서요’라는 말로 토를 달고 이후 침묵했습니다.
다음날의 아침 밥상 앞에서, 나는 늙어가는 아내에게 젊은 새댁과 간밤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얘기를 하면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사랑의 끝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해?” 아내는 망설이지 않고 명쾌한 목소리로 단번에 대답했습니다. “사랑의 끝엔 그야, 사랑이 있지!” 나는 놀라서 숟가락을 든 채 아내를 바라보며 반문했습니다. “정말이야? 진지하게 좀 생각하고 대답해봐!” “진지하게 열 번 생각해도 내 대답은 같다구요! 설령 당신이 날 배신하더라도, 애들이 날 싫어하더라도 난 그렇게 믿고 살 거야!” 그 순간 내 속 깊은 곳에서 소리 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의 비명은 ‘아이구, 이 여자 분한테 완전 졌네!’였습니다. 직장생활조차 해 본적 없는 세상물정 모르는 아내한테 나는 완전히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작가’인 나보다 훨씬 더 충만한 인생을 살고 있었고 훨씬 더 당당했습니다. 나는 제자에게 전화로 아내의 말을 전하면서, 괜히 ‘단순무지하다’고 아내의 흉을 잔뜩 보았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찾아온 제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랑하고 죽자고 싸운 끝에 주례인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었는데요, 선생님 대답에선 솔직히 아무 위로도 못 받았으나 사모님 대답을 듣곤 갑자기 힘이 막 생기더라구요. 신랑하고 화해했어요.”
그렇습니다. 옛말에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고 사랑의 끝은 사랑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혼하는 부부들에게는 그 사랑이 남지 않기 때문에 사랑이여 다시 한 번 시작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혼사유 중에 가장 많은 것은 성격차이라는 것도 성과 사랑의 문제로서 서로 자기 자신을 주는 사랑으로 극복하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가정의 마리아와 요셉 부부관계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자녀들이 성격차이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변화의 희망으로 인내하고 받아들이듯이 자녀들 관계 이상인 부부관계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다 보면 남는 정으로도 얼마든지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 경우가 있습니다. 저의 동창신부님이 사목하는 노량진 성당 입구 왼쪽에 산비탈 길 반 지하 단층 허술한 집에 단 두 내외가 살고 있었습니다. 자고나서 새벽미사 전 3시~4시경 부부싸움을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싸우다가 울컥한 남편은 한 순간을 참지 못하여 아내를 흉기로 깊숙이 찔러 살해했습니다. 그 남편이 자진 신고하여 구급차와 경찰차가 성당마당에 가득차고 연행되고 아내는 병원에서 운명하였다는 사건이야기를 목격하신 것을 전해 듣고서 우리 두 신부는 ‘부부가 한 평생 산다는 것이 죽고 사는 문제구나!’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한순간을 못 참아서 깨 박살내고 아내는 살해당하고 남편은 평생 살인범으로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고 그의 집에는 텅 비고 그 성당 드나들 때마다 보게 되는 그의 까만 지프 승용차만 주인을 잃고 남아있구나! 그들도 한때 사랑했고 그 사랑의 끝에 사랑이 남았다면 그런 죽음만이 아니라 삶 과정에 얽히어서 함께 늙어서 비록 몸은 노쇠하여 낙엽처럼 떨어지는 때가 있어도 새 생명의 씨앗같이 사랑의 끝엔 사랑의 결실의 생명으로 우리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는 사랑의 약속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평생 모든 날에 복을 내리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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