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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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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결실의 계절에 영혼의 결실을 거두는 선교주일을 맞이하는 지난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연시는 잔을 마시고 그분이 받는 세례를 똑같이 받는 것”(마르 10,38)중 제29주일 복음 성서 말씀 장면은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관하여 다투는 것을 보시고 화를 내신 것입니다. 그분의 나라에서 권한과 권위의 조건은 형편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입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그러한 섬김, 그러한 별 볼일 없음에 대한 간곡한 훈계는 성찬례 설정 후 즉시 따라옵니다. 앞으로 “그분을 기억하여 이를 행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인성 안에서 예수님의 권능의 길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서를 보면, 이 계명을 단순하게 또다시 반복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수건을 들고 제자들에게 몸을 굽혀 그들의 발을 닦아 줍니다. 그분은 이런 몸짓으로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공동체에서 서로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요한 13, 1-17).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 42-45).
여기서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라는 것은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도 이 세상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는 가장 큰 사랑으로 섬기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 근거해서 내세운 인간사랑은 모든 경계를 넘어서 개방되어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철저성(Radikalität)은 용서, 봉사, 포기를 포함하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첫째,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즉 끝없이 용서하고(마태 18,22; 참조: 루카 17,4), 심판하지 말라(마태 7,1)는 예수의 요구는 “한계 없는 용서의 자세”를 나타냅니다.
둘째, 예수는 거듭해서 (제자들의 다툼에서, 최후만찬에서, 발을 씻길 때에도) “서열 없는 봉사”를 요구합니다.
셋째, 예수는 “대가 없는 포기”를 주장하였는데, 구체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마태 5,41), 자신을 희생하며 권력을 포기하며(마태 5,40), 맞대응의 폭력을 포기하는 것(마태 5,39)으로 나타납니다. 권력에 앞서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남들에게 이롭게 사용하기를 서열 없는 상호봉사, 섬김, 사랑으로만 쓰라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어느 교구에서 그 교구 사제가 미사 주례를 하고 교구장님이신 대주교님과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서서 공동 집전하실 것으로 생각했던 대주교님께서 미사 집전하는 저에게 바짝 다가오시더니 그때부터 저를 아주 황송하게 하셨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내내 경본을 넘겨주시고, 봉헌 예물을 준비해 주시고, 심지어 손 씻는 물과 수건까지 대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지막한 소리로 “주교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시며 하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결국 주교님의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미사가 끝이 나고 제의방에 들어와 인사를 마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교님 황송했습니다”라고 했더니 대주교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인 페르소나 크리스티”(In Persona Christi)였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사제의 인격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는 사제가 미사를 온전히 집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주일은 ‘전교 주일’입니다. 전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리반에 사람 한 명을 더 데리고 오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숨어 계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가 또 한 분의 그리스도라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전교일 것입니다. 또한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성공한 삶이라는, 기쁨에 찬 확신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그 삶으로 우리 가족들을 초대하고, 우리의 직장 동료들을 초대하고, 우리의 이웃들을 초대하는 삶이 전교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인 페르소나 크리스티.”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의 인성 안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사의 삶이라면 내 가족의 인격 안에도, 우리 인격 안에도, 이웃의 인격 안에도 그리스도가 숨어 계심을 믿으며 극진히 섬김의 삶을 살아갑시다. 섬김의 삶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성공한 삶이 됩니다. 그 삶을 살고 그 삶으로 세상을 초대합시다.
오늘이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입니다만 어떻게 우리 일상생활을 복음화 하여 우리가 선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실례를 우리 함께 묵상하십시다.
아주 오래전에 찜통 같은 더위와 습기로 가득한 어느 날 오후, 외로운 나그네 한 사람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안전한 중세 도시 밖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성문을 나가서 한참 가다가 나그네는 먼 곳에서 벽돌을 가득 실은 외바퀴 수레를 밀고 오는 세 명의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나그네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첫 번째 남자가 가까이 오자 나그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목마르고 피곤한 그 남자는 물어보나마나한 질문에 약간 화가 나서, “나는 벽돌을 가득 실은 일륜차를 밀고 있소!”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 남자가 다가오자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답이 달랐습니다. “내게는 아내와 어린아이들이 있소. 그들을 먹여 살려야하오. 그러니 그들을 먹여 살리려고 일한다오.”
세 번째 남자에게로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잠깐 멈추더니 일륜차의 손잡이를 낮추고 질문하는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나그네는 그의 눈에서 피로와 지친 기색 이상의 그 무엇을 보았습니다. 그의 자부와 존엄의 단서를 그는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냐고요? 나는 주교좌성당을 짓고 있소!”
자기의 뜻과 지향이 달랐기에 이야기 속에 세 남자는 지겨운 일상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세 번째 남자 같이 복음화 생활로 선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화 선교를 위하여서는 복음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을 내어주며 봉사받기 보다는 봉사하는 자세로 예수님의 선교 방식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선교해야 할 현장이란 우리 사회가 80대 20이란 단 10%이내 사람들의 공화국을 만드는 정책에 있지만 그밖에 있는 여러 중간 집단과 연대도 꾸릴 줄 알아서 정권안정을 꾀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건설 규제 완화와 거대형 토건 프로젝트 진행, 저금리 정책 등을 통한 이명박 정권의 “집값 떠받치기”는 일차적으로 강남 귀족들의 자산 가치를 살려주는 정책이지만, 이와 동시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55%의 한국인들에게도 나름의 호소력을 지닙니다. 물론 그 정책의 이면에 비싸진 전세 값을 울며 거저먹기로 내야 하는 45%의 무주택자의 고통도 있고 그런데 궁극적으로 토건주의가 나라를 망친다 해도, 지금 당장에 주택 소유자 계층의 상당 부분은 이 정권의 “토건형 케인스주의”를 좋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국내의 극우․보수 블록은 이명박 정권의 대중의 포퓰리즘, 즉 반북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코드’도 공유합니다. 물론 그 근시안에 있어서 반북주의는 토건주의에 결코 못지않습니다. 맹목적 반북주의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계속 증강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서 북한 지배계급 안에서의 강경파의 위치를 강화시켜줄 뿐입니다.
이와 비슷한 정신 상태를 과시했던 일본 자민당의 극우․보수 블록이 이번 총선에서 붕괴했듯이 이명박의 보수 대연합도 장기적 저성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붕괴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한반도의 자연과 노동자, 서민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어둡기만 합니다. 한 마디로 백성위에 군림하고 세도부리며 강제로 억압하는 통치를 실제 내용상으로 안으로 보여주는 정치로 지지도 상승을 꾀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는 현실 결과만 나타납니다. 죽음의 어두운 그늘에 누워 있는 목자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슬픈 양떼들뿐 입니다.
요즈음 TV 인기 연속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선덕여왕의 정권싸움에서 미실은 백성들이란 진실은 부담스러워하며 사랑은 사랑으로 받지 않고 소통은 버거워하니 술수정책으로 강제로 억누르는 성서에서 말씀하시는 다른 민족자들같이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땅의 민주화와 재야세력의 민주화의 정도나 사랑으로 개혁하려는 선덕여왕은 또 다른 악을 선으로 이기는 사랑의 술수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복음화 선교란 90%이상의 국민들에게 어두움 속에서 희망의 빛이 되어 주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의 빛으로 내어주는 이 제대위에 촛불 빛으로 밝히지 않으면 이 세상에 빛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섬김이 반드시 권력 앞에 침묵하고 복종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권력이 남용될 때에는 과감히 목청을 높여 권력에 저항하고 거부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평생 동안 당대의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의 남용을 몸으로 겪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갖가지 형태로 악하고 폭압적인 권력을 체험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가정, 공동체, 사회)에 당신이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도움을 내리시어, 당신이 생전에 하셨듯이, 악에 굴복하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법(로마 12,21 참조)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의 길, 교회의 길은 고통의 길이라기보다 봉사의 길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고통이 아니라 봉사이며 예수께서도 고통을 당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봉사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봉사하려면 죄에서 오는 고통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지만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힘은 봉사의 정신에서 나온다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는 예수님께서 파견 명령에 따라서 절대성으로 하는 것이며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과 함께 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이 세상을 이겼다. 그러니 너희도 선교로 이 세상을 이겨라 하십니다.
알렐루야,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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