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를 회심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의 큰 의미이다.
즉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돌리고
우리 삶의 충만한 의미를 발견하라는 끊임없는 초대다."
헨리 나웬 신부님이 '지금 여기에서' 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대부분의 일은 하늘나라에 대한 초대 말씀이다.
이것이 곧 그분이 오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당신의 몸된 교회를 통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리라.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 초대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며
외면하고 산다.
불행히도 이 둘도 없는 행복에의 초대에 불응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곧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삶에
대한 초대이다.
예수님이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신 확실한 선물이 바로 하늘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은 10달을 준비해서
세상에 태어나고, 또 100년을 준비해서 영원한 나라에서 태어나 살게 된다.
그래서 3세대를 산다고 한다. 1세대는 모태에서, 2세대는
현세에서, 3세대는 후세에서 산다는 뜻이다.
초대에 응하는 자만이 하느님의 선물을 발견 할 수 있고, 그 영원한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의 대상은 누구인가. 세상 모든 이 들 이다.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 자격구분이 없다.
그런데 이 초대에
응하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자기 선택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본질과 비 본질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 그 어떠한 화려한 초대에 비해, 하느님의 초대처럼 훌륭한 분의 초대가 또 있겠는가.
최고의 예법과 예복을 갖추고도
모자랄 터인데도 너무나 상식 밖의 예절없는 태도를 보는 경우가 잦다.
혼인 예복이란 다름아닌 '경신례'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몸은 성당에 나와 있어도 마음은 온 세상 바깥일에 매달려 떠돌아다닌다면 분명 예복을 갖추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하느님의
초대에 온 정성을 다하고 온 마음을 다하고 온힘을 다하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도 그랬고, 예수님도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외치지 않으셨을까. '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전혀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을 모독하고 능멸하는 자로 남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초대에 대해 먼저 감사의 예복, 기쁨의 예복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심한 결례가 아닐까.
신자가 신자답지 못하고, 수도자가 수도자답지 못하고, 성직자가 성직자답지 못하다면
그 역시 예복을 입지 않은 경우가 아닐까.
매일 매일 이 예복에 합당한 몸가짐, 마음가짐을 하고 있는지 세심히 점검할 일만이
초대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