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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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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영원하고 창조력 있는 살아계신 말씀은 숨어 있기도 하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속에 계시되어 있기도 한데, 그것을 듣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첫 번째 길이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 1, 1-5)

요한복음의 이 본문에는 예수님에 관한 한 가지 핵심 진리가 강조되어 있다. 즉, 그분은 신기하게도 창조 전부터 존재하셨고, 인류에게 생기를 주시며, 시간과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신다. 이런 부류의 말씀은 지면에 묶이지 않고, 창조하며 행동한다. 요한은 로고스라는 그리스어 단어를 써서 그 의미를 담아낸다.

나 자신의 말은 때로 그 창조력을 잃는다. 우리의 실존을 규정하는 많은 말들과 대비되어 하느님의 이 창조력 있는 말씀이 존재한다. 살아계신 말씀은 하느님의 영원한 침묵에서 태어난다. 우리가 증거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침묵에서 나온 이 창조력 있는 말씀이다.

말씀이 마리아의 태중에서 육화되기 전에 그녀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녀의 순종적인 경청 덕분에 말씀은 그녀 안에서 육신이 될 수 있었다. 경청이란 매우 취약한 자세다. 마리아는 매우 취약하고 완전히 열려 있고 매우 수용적이었기에 자신의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었다. 그녀 안에는 천사가 알린 말씀에 대항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리아는 열심히 귀와 마음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녀의 이해와 통제를 훌쩍 넘어서 그녀 안에서 약속이 성취될 수 있었다. 마리아는 말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

경청은 하느님의 살아 있고 창조력 있는 말씀에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의 중심 태도다. 기도는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영향력을 수용하는 것이다.

시편 저자는 그렇게 마음이 완고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수 이끄시는 양 떼로세.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므리바에서처럼 광야에서, 마싸의 그날처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나를 떠보았다.”(시편95,7-9)

여기서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사랑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경청하려면 예수님을 우리 삶의 본으로 삶고 예수님께서 보이신 삶의 방식을 전심으로 따라야 한다. 이런 경청은 개인적인 기도생활을 전제로 한다. 또 예수께서 하느님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서 오늘도 세상 속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강생육화하신 생명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이런 경청의 지순한 형태를 우리는 마리아에게서 본다. 그래서 사촌 엘리사벳은 그녀를 “복되다”고 한 것이다. 그녀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신실한 자들의 어머니가 된 것은 그녀가 자기 안에서 육신이 된 그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신실해지기 원하는 우리도 그와 똑같은 순종으로 부름 받았다. 우리가 말씀을 신실하게 경청할 때 말씀은 우리 안에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함께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인류 안에 숨어 계신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은 한 인간이 되셨다. 아주 열악한 상황에 처한 작고 압제받는 민족 가운데서 말이다. 그분의 생애에는 호화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예수님의 기적들을 보아도 우리는 그분이 자기를 선전하려고 사람들을 고쳐주거나 살려주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사람들을 막아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하곤 하셨다. 그분은 자기 나라의 통치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셨고, 두 범죄자 사이에서 치욕스러운 죽임을 당하셨다. 그분의 부활은 숨은 사건이었다. 그분을 부활하신 주님으로 뵌 사람들은, 그분이 죽으시기 전에 그분을 친밀하게 알았던 제자들과 소수의 남녀들뿐이었다. 그분의 생애도 죽음도 부활도 하느님의 엄청난 능력으로 우리를 깜짝 놀래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은 육신의 형태를 입으시고, 낮게 숨어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하느님이 되셨다. 그것이 말씀의 진정한 능력이다.

혹시 당신은 하느님의 말씀을, 밖에 나가서 당신의 삶을 고치라는 하느님의 훈계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씀의 충만한 능력은 당신이 말씀을 듣고 나서 삶에 적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동안 그 변화의 능력이 당신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데 있다.

성 마리아 어머니의 주님의 천사가 전하는 말씀에 주님의 종이오니 제게 이루어 주소서.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라는 이 말씀을 마리아는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묻고 대답 말씀을 듣고 순종하시어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고 응답하신 것이다. 마리아 어머니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시기 전부터 이미 당신의 믿음 안에서 말씀을 잉태하시어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낳으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천사의 말대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말씀대로 말이다. 故 헨리 나웬 신부님은 지적한다.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의지하는 무력한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은 바로 무력함에 있다. 이 권능은 통제하고, 강제하며, 그리고 지시하는 권능이 아니다. 이 권능은 치유하며, 화해하며, 그리고 통합하는 권능이다. 이것이 성령의 권능이다. “능력이 예수님에게서 났기” 때문에,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루카 6,19)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이 성령의 권능이다. 성령은 우리들에게 권능을 주고 우리들이 치유하는 존재가 되게 한다. 우리가 그러한 성령으로 충만하면 치유자가 되는 것 이외의 다른 길은 없다.

이 성령을 우리는 성 마리아 같이 듣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기도는 성령이 주는 선물이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언제 기도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걱정한다. 우리는 기도의 방법이나 기교에 관하여 쉽게 걱정에 빠진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기도를 하는 자는 우리가 아니고 우리 안에서 기도하는 성령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26-27) 이 말을 이해하면, 우리는 성령이 위로를 주는 사람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궁구하시더라는 성 마리아 같이 말이다. 성령을 성 마리아 같이 받아들이면 이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께서 사신다는 사도 바오로의 외침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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