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작고, 너무나도 거대하고.....‘
성탄절 전례 가운데 중요한 세 가지는 예수께서 육신을 취하여 오시고, 우리의 마음에
오시고, 최후 심판날에 오시는 것을 경축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가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후 심판은 교회가 거룩한 아기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미래의 사건이다. 태양을 만드신 그분은 이 밤에 폭발하여 목자들의 세계로 들어가심으로써 그들을 혼란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이 첫번째 오심에서 그 분은 한낱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원 있는 아기”(루가 2,12참조)일 뿐이었다.
그분은
당신이 원했다면 다른 방법을 택하실 수도 있었다. 어마어한 그분의 에너지를 생각해 보라. 가장 밝은 별보다 몇십조 밝게 발산할 수 있는 그 빛을
생각해 보라. 태양의 중심보다 몇십조 더 뜨겁게 방출할 수 있는 열기를 생각해 보라. 지상의 핵에너지를 모두 합친다 해도 그분이 최후에 돌아오실
때 앞서 터질 폭발력에 비하면 나뭇가지에 불붙는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기의 천진성을 나약함으로 오인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구유에 누워 있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 보이신 이 공손한 태도는 클라보의 성 베르나르도로 하여금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주님,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작게 만들었나이까?” 그런 그가 탈혼상태에서 한 답변은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나이다!”였다.
그리고 천사들이 목자들을 향해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하고 외쳤다. 그렇다면 기쁜 소식이란 무엇일까? 성 요한은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실로 경이로운 선언으로 간결하게 표현했다.
그리스도는 인류가족의 일원이 됨으로써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셨다.
그분은 인류가족을 당신과 결합시킴으로써 구성원 하나하나를 당신께 끌어당기셨다. 사람이 되신 말씀으로 인해 우주가 변모되었고 모든 창조계가 그분의
몸이 되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당신 자신으로 변모시키는 누룩이시며 하느님이시며 사람이 되셨다. 그래서 당신의 에너지를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하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였다.
은하계의 빛이 한군데로 모아지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선과 진리는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로 끌어당기기 위해 존재하고 그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베들레헴 아기의
가슴속에 담겨진 신적 에너지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이다.
“주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작게 만들고 있나이까?” 이렇듯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누구든 간에 각자에게 손을 내밀고 계신다. (깨달음의 길 2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