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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칫집에 온 신랑 친구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단식을 할 수 있겠느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온다.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이다. 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낡은 옷이 새 천조각에 켕겨 더 찢어지게 된다. 또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코 2,18-22)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수많은 제자들을 모아들였다. 예수께서도 그에게 세례를 받았고,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서 첫 제자를 뽑으셨다. 요한은 금욕주의자였다. 그는 짤막한 허리옷을 걸치고 메뚜기와 들꿀만을 먹고 살았다. 혹독한 단식을 했고 자기 제자들도 똑같이 하기를 바랐다.
두 사람의 영적 스승이나 두 개의 신앙 공동체가 서로 이웃하고 있으면 갈등이 일 수 있다. 서로가 헐뜯고 비방하는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규범과 저들의 규범, 우리의 영적 스승과 저들의 영적 스승, 우리의 전통과 저들의 전통을 서로 비교하기도 한다.
이 사건에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을 공격하고 나선다. "우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하는데 당신네는 왜 단식을 하지 않느냐?"는 말은 예수의 제자들의 수준이 요한의 제자들만큼 높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질문의 의미는 "감히 너희가 어찌 우리와 비교될 수 있겠느냐?"하는 것이다. 엄격한 규율은 뭇사람의 시선과 선망과 갈채를 받기 마련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이런저런 사소한 약점에 대해서는 크게 관계하지 않으신다. 그분이 답변삼아 되묻고 계시는 질문, "혼인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는 요한의 제자들이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그들은 거룩함을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그분은 덧붙여 말씀하신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때는 혼인잔치에 온 손님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제자들 가운데 머물고 있는 그 현존이 곧 하나의 잔치라는 사실과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동안 슬퍼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점에 빗대어 말씀하신다. 혼인잔치에 와서 슬퍼하는 사람들은 결단코 하객으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이같은 통찰력을 우리의 개별적인 은총체험에다 적용하자면 베푸는 능력 못지않게 받아들이는 능력도 필요한 것이 잔치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신 동안은 금욕을 실천할 때가 아니다. 그것은 정과 사랑을 나누고자 찾아온 소중한 친척이 우리가 잡다한 허드렛일로 분주한 것을 보고 "나중에 다시 오마"고 말하게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신다. "낡은 옷에다 새 천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짓은 터진 구멍을 더 크게 만들 뿐이다." 그러고 나서 덧붙이신다. "사람들은 낡은 가죽부대에다 새 포도주를 담지 않는다." 오래 된 가죽부대는 바짝 말라 주름이 지고 금이 생긴다. 그런 가죽부대에다 새 포도주를 담으면 새 포도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화학작용 때문에 가죽부대는 터지고 만다. 낡은 가죽은 발효로 생기는 거품을 견디어 낼 만한 유연성이 없다.
새 포도주는 성령을 나타내는 훌륭한 표상이다. 우리가 관상기도를 통해 의식의 직관적 차원으로 옮아갈 때 낡은 구조들로는 성령의 활력을 담아내지 못한다. 낡은 구조들은 필요한 만큼 유연하지 못하다. 따라서 새롭게 손질하든가 아예 치워버리든가 해야 한다. 성령을 상징하는 새 포도주는 사람들을 북돋는 속성이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교회의 교부들은 이것을 '술 마시지 않은 취기'라고 불렀다. 성령은 차분하게 있더라도 울타리들을 부수며, 따라서 그를 작은 움막에다 붙잡아 두는 일은 불가능하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훌륭한 관습을 지니고는 있지만 단식이라는 제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하신다. 예수께서 주시는 성령이라는 포도주는 그들의 편협한 사고방식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시야를 넓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이라는 새 포도주는 그들에게 괴로움만 주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좁은 정신세계의 틀을 깨부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가지고 있는 것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 모두를 잃고 말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에 대한 해결책 하나를 제시하신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다 담아라." 복음이라는 새 포도주는 성령의 열매, 곧 그리스도의 정신에 깃들인 아홉가지 속성들로 나타난다. 새 포도주를 담으려면 낡은 구조보다 한결 적합한 새로운 구조를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낡은 구조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성령이라는 새 포도주는 잃고 만다. 이런 일은 중세기 말경, 특히 성령의 열매들을 가꾸는 일보다 공식화된 교리와 외형적인 규범들을 강조한 종교개혁 이후의 교회에서 벌어졌다. 덕분에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면서 영적으로 광야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을 목격해야 했다. 이제 묵은 포도주는 동이 나서 없어졌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관상기도 전승에서 새 포도주, 즉 성령을 통한 쇄신을 재발견해냈다. 하지만 이같은 성령의 움직임은 새로운 구조에 담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낡은 구조들은 터져버릴 우려가 크다.
낡은 가죽부대를 수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름칠을 듬뿍하면 낡은 가죽부대들도 어느 정도 유연성을 회복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새것만은 못하다. 그리고 기름칠하는 과정 또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신자들 사이에 관상생활이 새롭게 복원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아마도 사람을 분발하게 만들고 부풀리고 일깨우는 특성을 가진 새 포도주를 보다 훌륭하게 담아내는 새로운 형태의 관상생활 양식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새 포도주는 곧 복음의 관상적 차원이다. 그리고 그 토대가 되는 행위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받아들이는 동의이다. 이 동의가 향하는 방향은 우리 자신의 의중이 아닌 하느님의 의중이다. 이 포도주를 쏟아 붓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성령이다. 우리의 성덕으로 하느님을 감동시키거나 그분의 관심을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새 포도주가 아니다. 그같은 태도는 공로를 하느님의 총애를 얻는 필수적인 수단으로 보는 묵은 포도주에 속한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의향에 동의한다면 그분은 우리 안에서 한없는 자비와 기쁨과 평화, 바오로가 열거한 성령의 열매들(갈라 5, 22-23 참조)을 통해 역사하시게 된다. 이런 포도주는 어떤 구조로도 담아낼 수 없다. 바오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성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법도 필요치 않습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모든 법의 목적을 실현하고 있는 까닭에 법을 초월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의로운 법을 자발적으로 두루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 토머스 키팅, <깨달음의 길I>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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