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시인은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이라 하였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의' 연탄 한 장 ' 에서 )
삶이란 자기를 고스란히
사르는 일이다. 그래서 한줌의 재가 되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살라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군가를 위해서....
얼마 전 일간지에서,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할머니들의 나들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잘 먹지도 잘 쓰지도 잘 입지도 못하고
일평생 일뜰살뜰 모은 돈을 좋은 일에 쓸려고 기부하는 모습이 가히 존경스럽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했다.
예수님은 과부의 렙톤 두 닢을
그지없이 칭찬했다. 자기가 가진 전부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천국'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안다면 지금 당장 있는 것을 다 팔아서라도
천국 땅을 살려고 하지 않을까 .
진주가 묻혀 있는 밭을 사기 위해 자기의 전재산을 투자하는 농부처럼....
돼지의 푸념 이야기를
들어 본다.
왜 자신은 항상 소만 못하냐고. 똑같이 자기 살고기를 사람들에게 주건만
돼지보다는 소에 대한 가치를 더 두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아마도 하나는 살아서 주고, 하나는 죽어서 주는 차이가 아닐까.
소는 살아 있을 때 우유와 밭갈이와 소달구지 등 요긴한 일을
다 하는 반면, 돼지는 살아서는 줄곧 먹기만 하고 아무 것도 안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본 '워낭 소리' 라는 영화에서 자기 주인을
위해 죽도록 일하던 선량한 소의 얼굴이 떠오른다.
엔돌핀이 가장 많이 나오는 때는 언제인가 하면,
부상당한 병사가 마지막 물통의
물을 마시려는 순간,
건너편 동료의 갈증어린 눈길을 외면 못하고 그 물을 건네줄 때, 서로 손바닥이 맞부딪히는 순간이라고 한다.
뭔가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바로 그 순간이 세상에서 자기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때임을 증명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 것이며 존중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감을 느끼며 이해하는 것이고
나의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 에서 )
자기를 남김없이 다 내어주는 사랑이 흐르는 곳에는 반드시 하느님이 계신다.
사랑 있는 곳에 계시는
주님의 눈은 지금도 과부의 '렙톤 두 닢'을 애타게 찾고 계신다.
나에게 있는 렙톤 두 닢을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가?
사랑의
본질은 오로지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 삶에서 공기처럼 필요 불가결한 요소가 아닌가.
"산다는 것이 존귀한 것이
아니다.
잘 산다는 그것이 존귀한 것이다.
그러나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성 아오스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