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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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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교회력의 연중 마지막 주일이며, 한주 뒤에는 대림 1주간을 맞이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의 수난기에서 예수를 왕과 같은 인간으로 묘사하여 삶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왕과 같은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슨 짓을 했소?"라는 빌라도 총독의 질문에 예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한 18, 36)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빌라도와 그의 군대는 예수를 체포하여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처형했으나 예수에 대한 실질적인 힘은 없었습니다. 외적으로 예수는 엄청난 십자가상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당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단지 참된 왕으로서 왕관을 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여기서 예수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고통 한 가운데서, 거부당하고, 심판받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상처받고, 고통 받는 상황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자녀다운 신적 품위가 존재하고,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힘도 우리로부터 이것은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죽음 직전과 같은 완전히 무력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왕과 같은 품위는 하느님의 자녀다움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축일로 지냅니다. 주의 공현축일과 같이 이미 다른 축일들에서 그리스도가 이 세상 전체의 왕이란 사실이 드러나는데, 마지막 주일에 다시 한번 더 이 테마를 다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일들은 그리스도가 왕이란 사실을 단순히 알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도 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왕과 같은 인간임을 체험하게 합니다. 왕은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사람, 자기 자신의 열망의 주인인 사람, 그리고 자신의 적들에게 무기력하게 넘겨지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왕은 인간 존재의 깊이와 높이를 잘 아는 현자도 의미합니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랍비 슐로모(Rabbi Schlomo)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악한 본성이 행하는 가장 나쁜 행위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왕의 아들이란 사실을 잊어버릴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왕과 같은 품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위해 그리스도왕 축일을 지냅니다. 전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무기력을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지닌 참된 품위를 발견하도록 하려 하고, 우리가 세례 때 받은 그리스도의 왕직에 함께 참여하도록 하려 하며, 우리가 신적 품위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 세상 안에서 바로 서서 걸어갈 수 있고, 이 세상의 모든 권세들에 대해 자유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 6학년 교실 급훈에 '꼴값을 다하는 人間이 되자'라는 교훈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 왕 같이 우리 인간을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을 당신 자녀들로서 왕의 꼴값을 다하는 인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이브 첫 조상의 원죄 이후 본죄와 함께 금전만능 우상 숭배의 노예로, 권력 절대화의 우상의 노예로, 쾌락의 노예로 전락하여 제 '꼴값'을 다하지 못 할 뿐 더러 죄인인 등신이 육갑 칠갑의 꼴값을 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지도자들이 불의부정 비자금으로 온간 불법의 범죄인들로서 네가 나보다 더 큰 도둑질하였느니, 너도 마찬가지로 정치 비자금에서 어느 누구도 자연스러울 수가 있으며, 어느 누구의 손이 깨끗할 수 있겠느냐는 식입니다. 어디 정치인들뿐이겠습니까?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가진 자들이나 안다는 자들이나 저마다 자기들 편만 섬김을 받겠다는 자칭 왕들 뿐이며 백성들 민(民)은 마치 장기판에 졸(卒)을 상기시키듯 자기 자신만을 섬기며 죽으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모든 정치 권력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국민을 두려워 할 줄 아는 민심은 천심이 예수께서 빌라도 총독에게 증언한 진리라고 전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하셨습니다.즉, 예수께서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시어 당신 자신의 꼴값을 다 치르러 오신 것입니다. 다만 사랑으로 우리 인간들 마음의 진정한 왕으로서 백성들을 섬기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요즈음 사법부와 입법부 정치인들의 불법과의 전쟁을 보면서 민권론을 강조한 <헨리 4세> 제 2부 5막 2장을 우리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당시의 대법원장 격이었던 법관은 헨리 5세가 황태자였을 때, 법관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그를 감옥에 보냈던 모양입니다. 마침내 헨리 4세가 눈을 감고 그 아들 헨리 5세가 등극하게 되자 그 대법원장은 보복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헨리 5세는 의연했습니다. "대법원장, 그대의 결정은 옳았소. 나는 앞으로도 그대가 권형(權衡: 재판)과 검(劍: 형벌)을 맡아 주길 바라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자라서 만일 내가 그대에게 했던 것처럼 그대를 모독한다면 다시 그대의 선고를 순종할 때까지 장수하기를 빌겠소. 나 또한 그때까지 살아서 부왕과 같은 말을 하고 싶소. '아, 나의 아들에 대해서도 정의를 행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법관을 가진 나는 행복하도다. 더구나 정의 앞에서는 황태자의 권리도 버리기를 서슴지 않는 아들을 가진 것이 그에 못지 않게 행복하도다' 라고…"
참으로 정의로운 법의 운영과 공정한 정치의 극치가 시(詩)로 승화하는 부활 정치의 감동적인 정경입니다. 굳이 왕과 대법원장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오늘의 집권층이나 법관 또는 검사나 수사관의 얘기로 확대되더라도 무방합니다. 저는 그저 우리의 법과 정치의 운영이 정도(正道)의 극치에 이르러 시로 승화되는 정경을 보고 부활 정치를 보고 싶은 것입니다. 법의 존중은 민의 존중으로 이어진다고 믿습니다. 새삼 민주를 들먹일 것도 없이, 민의 존중이야말로 정치의 바른길이라고 확신합니다. 군주의 시대에도 '민귀군경(民貴君輕)'이 주창되었습니다.
민의 자존이 훼손되고 순종에만 길들여질 때, 나라는 무력합니다. 순종의 태세만이 준비된 민의 사회는 집권층을 위해서도 유해합니다. 민은 끌려만 다니는 장기판의 '졸'일 수 없습니다. 거부의 회향(廻向) 돌아설 줄을 모르는 '졸'일 수도 없습니다. 민은 장기판의 '궁(宮)'이라야 합니다. 궁하면 통하여야만 합니다. 백성 민을 왕처럼 섬기는 정치는 부활로 가는 상생의 정치요, 자기 백성 민을 졸로 여겨 잡아먹기만 하는 왕은 졸이 없어 사면초가(四面楚歌)로 자기 자신도 죽을 수밖에 없는 살생정치일 뿐입니다.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17대 국회는 초선 의원들이 많아 물갈이되어 다를 것이라는 기대의 국민이 순수했습니다. 진흙탕 난장판 정치인들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한술 더 뜹니다.
우리 정치 이대로는 안됩니다. 더 이상 우리 정치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물귀신 정치가 되지 않으려면 보궐 선거에서 민(民)을 졸(卒)로 아는 정치인들을 판갈이 해서 민(民)을 관(宮)으로 아는 왕(王), 섬기는 정치인들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우리 정치는 우리가 선택해서 만들어 가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즉 우리 국민 각자가 자기 스스로 왕으로서 행사하는 주권을 행사할 때에 왕(王)으로서 섬김을 받을 수 있으며 섬기는 정치인들로서 우리 정치 개혁을 우리 백성 민권으로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오늘 주보에 계제(階梯)된 대림절 신앙생활 계획표에 따라 우리의 왕으로서 대림(待臨)하시는 그리스도 왕을 우리 가정에 우리 나라에 가장으로써, 왕으로써 맞이하는 왕다운 하느님의 백성 자녀로 주안에 거듭납시다. 진정 우리 마음의 왕으로써 대림하시는 주님을 맞아 왕다운 하느님의 백성 자녀로써 우리가 받을 세례로 거듭납시다. 우리 자신의 남은 생의 하루인 바로 오늘이 영원히 사는 하느님 나라의 시작이어야만, 예수께서 우도에게 선언하신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라는 말씀을 우리 자신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앉아 계시다. 주께서는 우리로써 왕국을 이루시고,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도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평화와 복을 주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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