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상지원단

2024.03.11 02:59

나는 세상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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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창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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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거리에는 태어날 때부터 눈먼 소경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경은 그 곳을 지나가던 예수님을 만나 평생 소원이던 눈을 뜨게 됩니다. 예수라는 분은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소경이 연못에 가서 얼굴을 씻었을 때, 소경의 눈은 밝아졌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생 소경의 치유는 예수님을 참된 빛으로 인정하고 믿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태생 소경은 자신의 힘으로는 세상을 볼 수 없고, 하느님의 힘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과 굳센 믿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흐리고 비 오는 날에 아무리 두터운 구름이 태양의 빛을 가린다 해도, 그 구름을 헤치고 올라가서 보면 태양이 여전히 밝은 햇살을 비추고 있음을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태생 소경은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알아봄으로써 영적인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태생 소경이 처음부터 완전한 신앙에 도달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단계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태생 소경을 통해서 ‘사람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배우게 됩니다.
눈을 뜨게 된 소경은 자기의 눈을 뜨게 해 준 분을 처음에는 그저 ‘예수라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소경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고백하고, 그 다음에는 ‘의로우신 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예수님과 대면했을 때에는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면서 “주님, 믿습니다.” 하며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태생 소경의 치유 사건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예수님께 대해 엉뚱한 말들을 했습니다. 유다인의 지도자였던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면서, 급기야 눈을 뜨게 된 소경에게 예수가 범법 행위자(실정법 위반자)라는 증언을 하도록 강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뜨게 된 소경은 그들의 허위 자백 요구를 거부하고, 주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당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른바 ‘양심수’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빛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어둠 속에 살고 있던 인류에게 신앙의 빛을 주시고, 옛 죄의 종으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세례로써 하느님의 자녀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감사송). 그러므로 세례로써 마귀와 죄를 끊어 버리겠다고 약속한 우리는 이미 어둠에 작별을 고하고 빛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는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에페 5,8)
빛의 자녀들은 하느님께 굳센 믿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시 22,1) 하고 노래하며 하느님께 모든 신뢰를 둡니다. 그러나 어둠의 자식들은 비록 그가 육신적으로는 정상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자리에 각종 우상들을 올려놓음으로 해서 스스로 소경이 되고 맙니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은 이기심과 질투, 분노와 편견, 오만 등으로……. 그것들이 그들의 마음에 겹겹의 어둠을 쳐 놓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자칫 잘못하면 사람을 외양과 외모로 판단하고, 하느님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말씀을 잊으며 살아가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이 아무리 성하고 밝다 하더라도 태양 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빛 없이는 하느님을 볼 수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잠에서 깨어나라. 죽음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리라.”(에페 5,14)는 말씀을 항상 의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순절은 어둠을 환희 밝혀 주시는 주님의 빛으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맑고 밝은 광명의 길을 향해 순례하는 시기입니다. 빛이신 주님께서는 믿음을 고백하는 가난한 자를 비추어 주시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 생명의 빛을 받으리라.”(요한 8,12)고 하셨습니다. 진정 주님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분의 모습을 보지 못하며 살아가는 원인이 무엇이겠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우리의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생활로 생명의 빛을 받을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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