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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신비

The Mystery of The Trinity, 소식지 261(201012), 토머스 키팅//이청준 신부 역

 

목마름이 깊어지는 과정들 ; 원천을 향함 : 향심기도는 우리 안에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생명에서 나온다. 우리는 처음에 이러한 움직임을 더 큰 것에 대한 갈망, 곧 우리 자신 너머에 계시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와의 일치에 대한 무언의 열망으로 체험했을 것이다. 일치의 순간들은, 음악을 듣거나 맑은 밤하늘의 별들을 볼 때, 자연 속에 깃든 신성함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갈망은 기도로서의 성경 봉독, 성사 참례, 또는 다양한 신심 행위들과 같은 종교적 수련에 의해 더 잘 드러날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되었으며 이제는 그분 본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원천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무조건적 사랑, 하느님의 생명, 하느님의 에너지 : 향심기도는, 삼위일체의 심연에서 솟아나 피조물과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무조건적 사랑의 충만함을 받아들이는 한 가지 방식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실존적 관계를 활성화시킨다. 향심기도를 하며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신적 생명의 거대한 흐름과 연결되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영적 의지가 전원을 켜서, 우리 몸속에 있는 전류(신적 생명)가 활성화되고 신적 에너지가 흐르게 되는 것과 같다. 그 에너지는 이미 그곳에서 활성화되를 기다리고 있다. 축제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 37-39) 물론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복음의 관상적 차원을 언급하고 계신다.

삼위일체의 내주, 우리 안의 하느님 생명 : 향심기도의 원천은 세례 때 혹은 우리가 은총 지위로 들어갈 때 시작된 우리 안의 하느님 생명, 곧 삼위일체이시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내주에 관한 교리는 영성 생활의 원칙들 중에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는 하느님 자신의 생명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 과학에 비유하자면, 소위 주파수가 높아서(실제로 이 주파수는 순수한 믿음만이 신적 현존에 충만히 다가설 수 있을 정도로 높다). 우리의 일상적 기능들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한 분 하느님 안의 세 가지 관계 : 삼위일체 교리는 전통적으로 성부, 성자(성부의 영원한 말씀), 성령이라 부르는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있는 세 가지 관계를 선포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으뜸가는 신비다.

이 맥락에서 성부는 아름답고 선하고 참된 모든 인간관계를 망라하지만, 어버이로서 혹은 원천으로서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성삼의 교리는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신학적 모델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모델에 따르면, 성부께서는 모든 가능성의 바탕이시라고 확언할 수 있다. 성삼 안의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이 말씀이시다. ‘말씀은 성부의 본질을 충만히 표현하는 성부이시다. 어떤 의미로, 성부께서는 말씀을 발설할 때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분은 성자 안에서만, 즉 당신의 내적 말씀 안에서만 당신이 누구신지 아신다. 성령은 자기를 전적으로 내어주는 사랑으로 성부와 성자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공통된 끈이시다. 달리 말해, 성부의 비워내심-무한한 가능성 안에 담긴 모든 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성삼의 영원한 말씀 안에서 온전히 표현된다. 성부는 성자께 당신 자신을 쏟아 부으신다. 그분께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전통 신학의 가르침은 성부께서 성자 안에 사시며, 자기 자신 안에 사시는 것이 아니라고 선포한다. 성자는 성부께서 전적으로 자유롭게 넘겨주신 엄청난 선성에 답하여, 일종의 포옹으로, 또는 교회 교부들이 말하는 성부와 성자의 가장 달콤한 입맞춤으로, 자신을 성부께 돌려드리신다. 그리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말하자면 두 분 공동의 마음이시다. 성삼 안에는 자기도 없고, 소유적 태도도 없다. 모든 것이 자기 승복이다. 모든 것이 선물이다. 모든 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요한 복음 사가는 조건 없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선포한다.

 

피조물의 원천인 말씀과 피조물 : 모든 피조물은 말씀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생겨난다. 그래서 말씀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적 원천(요한 복음서 머리글)이시며, 모든 차원의 피조물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하신다. 피조물은 무한한 실재의 다양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 실재는 어떤 식으로도 소진되지 않는다.

 

피조물 속으로 들어오는 말씀 ; 육화, 비워냄, 진통, 죽음, 포기 : 말씀이 육화하심으로써 당신을 비워내신 것은 성부께서 당신의 내적 말씀을 표현하실 때마다 행하시는 일을 가시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그 현현이 피조물 안에서 발생할 때 그것은 비워냄의 형태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신적 사랑이 피조물 속으로 들어갈 때는 진통을 겪어야 한다. 성부께서 어떤 의미로 죽지 않고서는 그 사랑이 피조물의 세계에서 충만히 표현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창조하실 때, 하느님께서는 어떤 식으로는 하느님이기를 그만두신다. 적어도 하느님께서는 창조 이전의 당신 모습을 포기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전적으로 피조물에 개입되셔야 한다. 모든 피조물은 영원한 말씀(하느님의 절대적으로 충만한 표현)이 지니신 진선미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신적 사랑의 가장 인간적인 표현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무조건적 사랑 또는 신적 사랑이라 부르는 비범한 사랑의 가장 충만한 인간적 표현이시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비의 핵심이다. 이것은 지성적인 수수께끼라는 의미가 아니라, 놀라움과 경외라는 의미의 신비를 말하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전달해준다. 그 기쁨에 적합한 응답은 우리의 전적인 승복뿐이다. 성삼의 관계는, 본성상, 무조건적이며 전적인 자기 승복의 신적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 무한한 사랑은 성부에게서 나와서 성자에게로 흘러들어가며, 성자를 통하여 모든 피조물에게 전달된다. 신적 사랑의 강으로 뛰어들라는, 아니면 적어도 영원한 생명의 강에 발을 담그라는 초대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다. 거짓 자아를 놓아버릴 때 우리는, 언제나 흐르고 있으며 끝없는 은총의 선물을 주는 사랑의 강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능력을 더 열어놓을 수록, 더 잘 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줄수록,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열어놓게 된다.

-하느님과의 친밀12장에 근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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