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상지원단

2013.03.14 10:24

주의 공현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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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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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새해에 주의 평화와 은총과 함께 안녕하셨습니까?
초기 교회의 '주님의 공현 축일'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 드린 동방박사들 뿐 아니라 예수의 세례와 함께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것, 가나안 혼인잔치 기적으로 하느님이 예수를 통하여 영원히 우리와 결합하신 것도 함께 기억하는 축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 삶은 새 맛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공현축일이 주는 은총은 우리도 하느님처럼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사람 모습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탄생은 아버지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나타난 그분의 영원하신 탄생을 가시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아버지 안에서 침묵은 곧 모든 것의 완성입니다. 이 침묵-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는 완성-은 곧 하느님의 아들, 말씀이십니다. 공현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영원한 탄생의 은총을 경축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이 은총은 성모의 표양대로 우리가 알고 동의함으로써 효력을 발휘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건넨 인사의 의미는 “기꺼이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가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처럼 되지 않고서 어떻게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겠습니까? 따라서 천사의 진짜 의도는 “마리아여, 그대는 하느님처럼 된다는 데 동의하는가?”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면 이런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대는 그대의 몸으로 하느님을 나타내 보이는데 동의하겠는가?”
우리는 현세에 몸담고 있으면서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같은 가능성을 죽음만큼이나 무서워합니다. 심지어는 누구보다도 준비가 잘 되어 있던 마리아와 요셉까지도 육화의 신비에 개입하기를 주저했습니다. 모든 인간 안에는 하느님과 합일함으로써 오는 무한한 생명과 행복에 손을 내뻗는 어떤 흐름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하느님의 초월성에 짓눌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존재합니다. 우리 각자 자신들도 성인 성녀들같이 살라면 더욱이 하느님 같은 자가 되겠는가에 대한 선택을 하라면 과연 "성모 마리아 어머님 같이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리다." 고 충실한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느냐는 문제인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응답에서 중심 축을 이루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동의가 모든 인간의 동의에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동의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까지는 우리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최대한의 동의를 하느님께 표하지 못합니다. 마리아께서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시중꾼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지극히 실질적인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하여라.” 그리고 마리아께서도 바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뜻을 준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준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는 사실에 동의함으로써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뜻입니다. “너는 하느님처럼 되는 데 동의하느냐?”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받고 있는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더 구체적입니다. “너는 네 몸으로 하느님인 나를 표현하는 데 동의하느냐?” 얼마나 두려운 질문입니까! 우리가 말하고 행하고 존재하는 모든 면에서 하느님이 된다는 것! 성모께서 하셨던 철저한 동의는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는 우리 각자가 성모 마리아의 동의를 살아가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이 우리 몸에 나타남을 기립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이 내 몸에 나타났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하느님의 광채가 여기 이 지상에 나타난 곳이 내 몸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자주 고통 당하는 내 몸에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빛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형제자매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이 내게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나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입니까?『나는 고요에 귀기울였다』라는 책에서 헨리 나웬(Henri Nouwen)은 수도원장이 그에게 묵상거리로 주었다는 말을 인용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그는 이 말을 종일토록 묵상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때 그는 자기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체험했을 것입니다. 하여, 이 축일은 그대로 하여금 하느님의 영광이 그대 몸에 나타남을 바라보며 그대 몸의 신비를 알게끔 할 것입니다. 이 축일은 “그대 자신을 알라!”라는 오랜 그리스적 요구에 진정한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대 안에서 하느님을, 하느님 안에서 그대를 발견할 때, 그대는 그대 자신을 알 것입니다. 그대의 몸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두루 빛나고 하느님 공현의 장소가 될 때, 그대는 참사람이 될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현존과 능력을 믿는 신앙뿐입니다. “모든 조물은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 19)
어느 사제의 숨바꼭질이란 시가 있습니다.
꼭꼭 숨으세요. 나의 예수님! 보이는 듯해 쫓아가 붙잡으려면, 얕은 언덕 너머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예수님, 숨바꼭질 끝내고 쓰러진 내 곁에 지체 없이 뛰어 올 나의 예수님, 꼭꼭 숨으세요 나의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 아버지를 제대로 찾아 만나 뵈올 수 있게 사는지 숨어 계셔서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도무지 안되겠다고 여기실 때 하느님이 나타나시는 주의 공현이 나타난다고도 우리는 묵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구약성서 욥기에 욥 성인과도 같이 자기는 왜 고초를 받아야만 하는가? 고 묻고 친구들이 제기하는 해답을 들으면서 그는 고뇌의 함정에 떨어졌다고 느끼는 반항적인 인간으로 바뀝니다. 끝에 가서 욥은 왜냐는 질문을 그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그치자 그는 하느님의 사랑 깊은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을 발견케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고통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을 아는 지식과 경험이 늘어나는 성장의 일부입니다.
20세기 은총의 시인 폴 클로델도 “너희가 신을 알았을 때 신은 너희를 편히 쉬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십자가 위에서 그분이 겪으신 사방에서 잡아당겨 사지가 찢어지는 그 모순과 대립 영혹과 육신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이성과 감정의 극단적인 아픔을 견디고 이겨야하기 때문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신은 우리 인간이 견딜 수 있을만큼 시련과 고통을 주신다고 숨어 계신 신께서는 우리 인간이 견딜 수 있을만큼 주의 공현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2002년 지난 한해동안의 능력을 기억해 봅시다. 그 능력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외치던 월드컵이나, 희생된 여중생 촛불시위와 16대 대선에서 증거 해 낸 것입니다. 즉 우리 국민 시민이 연대하여 더불어 함께라면 주의 공현 같은 사건을 집단 공동체로서 체험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국민 모두 연대하여 공동체로서 주의 공현의 역사를 반드시 이루어 내는 희망과 평화의 해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이 사라집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성장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 완성과도 같이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뿐이지만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이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I고린 13장 9 - 13)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서 계십니다. (I요한 4, 12 - 16)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 안에 주의 공현을 성령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려 예물을 가지고 왔노라. 주님께 드리는 가장 큰 예물은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도 자기 자신을 갓난아기로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만백성이 당신께 조배하리이다. 아멘.
- 안 충석 루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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