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상지원단

Extra Form
작성자 오방식 목사 <bsotm@hanmail.ne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참된 지혜의 삶


마태오 복음 제 11장 25절

-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본문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들었으나 회개하지 않는 도시의 모습을 보시며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이다. 동일한 말씀을 주시는 누가복음에서는 파송을 받은 칠십인 전도인들이 기쁨으로 돌아와 그들의 경험을 예수님께 아뢰면서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이 그들에게 항복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도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천지의 주재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 기도 속에 위의 말씀을 담고 있다.


제자들이 어떠한 경험을 하든지 예수님의 관심의 초점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시인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더 나아가 계시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를 전파하는 분일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전파하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생명의 계시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분의 멍에를 메고, 그 분을 배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참된 지혜의 삶이요, 참된 쉼이 주어지는 삶이다.


본문 말씀을 묵상하며 나도 주님처럼 하느님의 계시와 그 분의 권능과 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는지를 자문해 본다.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할 수 있을까.


어떤 임금이 재상을 불러 인구조사를 하라고 명령했다. 재상은 즉각적으로 전 국민의 수가 두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에 왕은 ‘너와 나도 두 사람인데 어떻게 전 국민의 수가 두 사람이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재상은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첫째는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많은데 두 종류의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명예와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분명한 자기 논리와 주장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참된 지혜를 얻었는가. 하느님의 지혜와 권능과 역사를 경험하는가.


예수님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한다. 모세는 하느님 앞에 섰을 때, 80세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못하는 어린 아이 같은 존재로 고백한다. 솔로몬도 ‘나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사도 바오로도 자신을 어린 아기로 인식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아무 것도 모르며, 아무 말도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라고 고백하지만 그들은 지혜의 사람들이었다. 바오로는 에페소의 모든 성도들을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런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영적인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또 그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또 성도들과 함께 물려받은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왜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에게 나타내시는가? 어린 아이의 마음은 맑고 순수하다. 아기는 활짝 열린 마음으로 두 팔을 벌려 부모에게 안기며 자신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한다. 어린 아이는 복잡한 언어나 체계적인 개념을 갖지 못한다. 언어는 없으나 그들은 얼마든지 소통하고 친밀하게 교제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소유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황폐한 우리의 마음에 통회의 눈물이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의 마음에서 진정한 통회의 눈물이 흐르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주님에 대한 사랑의 눈물이 흐른다면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우리의 눈이 열려 우리 가운데 임하여 자라가는 하느님의 나라를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본문에서 주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통회하는 심정으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우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삶이요 주님 안에서 참된 쉼을 체험하는 길인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작성자
공지 가톨릭 마산교구 주보 _ 2024년 4월 28일 부활 제5주일 __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4) 2024.04.28 6 윤행도 가롤로 신부/ 월영본당 주임
1118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2013.03.14 3842 이 호자 마지아 수녀 jaho264@hanmail.net
1117 11월 2일 - 위령의 날 2013.03.14 4029 오창열 사도요한 신부 ocyjohn@hanmail.net
1116 2006년 12월 31일 예수, 미리아, 요셉의 성가정축일 2013.03.14 3776 이준용 대건안드레아 leejuneyong@hanmail.net
1115 2007년 연중 제 2주일 2013.03.14 3988 윤행도 가를로 신부 munyman61@hanmail.net
1114 < 갈6:14-18 > 자랑할 것 없는 쉼과 가벼움 2013.03.14 4386 전주희 목사 rising223@hanmail.net
1113 <신30:1-14> 돌아오라 2013.03.14 3673 전주희 목사 rising223@hanmail.net
1112 <창18:11-10> 교회의 새 질서, 섬김 2013.03.14 3922 전주희 목사 rising223@hanmail.net
1111 <창18:20-32> 아브라함의 6번 기도 2013.03.14 3943 전주희 목사 rising223@hanmail.net
1110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으면서 2013.03.15 3757 오방식 목사 bsotm@hanmail.net
1109 歸天(귀천) 2023.11.21 20 안충석 신부
1108 가톨릭 마산교구 주보 _ 2024년 1월 28일 연중 제4주일 __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1) 2024.02.04 28 윤행도 가롤로 신부/ 월영본당 주임
1107 가톨릭 마산교구 주보 _ 2024년 2월 25일 사순 제2주일 __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2) 2024.02.26 31 윤행도 가롤로 신부/ 월영본당 주임
1106 가톨릭 마산교구 주보 _ 2024년 3월 24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__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3) 2024.03.31 12 윤행도 가롤로 신부/월영본당 주임
1105 경청 그리고 내적 자유 2023.07.16 38 이청준 신부
1104 광야의 유혹 2024.02.19 10 이호자 마지아 수녀
1103 국제 관상지원단 사명 선언문(11항~ 16항, 3회 연속) 2013.03.14 4009 한국관상지원단 koreacontout@gmail.com
1102 국제 관상지원단 사명 선언문(1항~ 11항, 마지막 회) 2013.03.14 4222 한국관상지원단 koreacontout@gmail.com
1101 국제 관상지원단 사명 선언문(1항~ 4항까지) 2013.03.14 4710 한국관상지원단 koreacontout@gmail.com
1100 국제 관상지원단 사명 선언문(5항~ 10항, 2회 연속) 2013.03.14 3984 한국관상지원단 koreacontout@gmail.com
1099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2024.01.23 21 남재희 신부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56 Next ›
/ 56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