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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 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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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생활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것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뿌리를 박고있다. 역사적 인물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 지상 생활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기도 생활인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행 하는 것이 당신 생명의 음식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하는 지속적인 기도생활이 이 지상 생활의 정체성인 것이다. 주의 기도에서 아버지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는 기도생활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표양자인 도로시 데이(Dorothy Day)의 증언은 교의, 예배 그리고 보편성에 관한 분명한 정통성에 직접 비례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가톨릭 신앙의 실천을 나무랄 데 없이 수행하고 지속시킨 만큼, 그 신앙의 열매는 사랑의 실천과 사회정의 평화운동으로 태어났고, 이 사실은 성숙한 가톨릭인들의 양심에 불가항력의 매력이 되어 왔다.
기도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행위이다. 이것은 우리가 상품화 현상에서 발견하는 인간 삶의 사회·정치적 측면을 성찰해 볼 때 더욱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상품문화가 우상숭배, 계약의 거부, 친밀함과 내면성으로부터의 도피, 지배와 조직의 강조 그리고 믿음·희망·사랑의 부재를 강조하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러나 기도는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또 다른 인격, 즉 하느님과의 계약적 관계이며 동시에 기도는 모든 인격적인 행위들, 즉 위험과 투쟁, 기쁨 그리고 어두움에 동참한다.
기도는 내면적인 행위로써, 고독에 침잠하기 위하여 상품화된 의식의 모든 양상과 태도로부터 벗어나는 중대한 노력을 요구한다. 기도 속에 우리 자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인격체로서의 우리 정체와 목표를 의식하는 것이며, 상품화의 거짓선전에 의해 충족될 수 없는 우리 존재의 근원적 욕구 앞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우리 자신 앞에 의식적으로 현존한다는 행위 자체가 바로 손쉬운 외형화와 문화적 압력 그리고 사회적 기대의 저향하는 위대한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처럼 문화적 제국주의의 굴레 아래 있을 때 기도가 특별히 더 어려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문화적 제국주의 굴레 아래서 기도한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하고, 우리 자신을 사람이라고 여길 수조차 없게 만든다. 성공한다는 즉각적인 보장도, 가늠하거나 다스릴 수도 없으며 능력있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고독한 침잠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도대체 실질적인 것이 결여되어 있다.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에 침잠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직해지려는 노력이며, 기도에 침잠한다는 것은 상업주의와 물질주의에 의하여 무참하게 부정되는 우리의 가난과 근원적인 필요와 만나는 것이며, 기도에 침잠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 아니라 참다운 자기발견을 위한 노력인 것이다. 또한 기도는 우리가 매달리고 노예가 되고 있는 온갖 우상들, 사회·문화적 위선 그리고 우리 인간이 단순한 역할에 불과하다는 기만에 대한 항의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온갖 친밀함으로 위장되어 행해지는 모든 실존적 폭력을 날카롭게 간파한다. “발견되기”를 두려워하면서 우리는 친밀함으로부터 도피한다. 우리는 우리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다른 이에게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 행하는 기도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어떤 누군가와의 통교 또한 똑같이 불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격적인 만남을 갈망한다. 어떻게든 우리는 자신이 발견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보여지고 있는 그대로 용납되기를 원한다. 이 갈망이 기도의 심연 그 한가운데에서 용솟음치고 있다. 우리는 기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이 이미 우리를 “발견하셨고”, 우리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처럼 우리 정체성 깊은 심연에 자리한 소식은 천박하거나 쓸쓸하지 않다. 모멸적이거나 황폐하지 않다. 이것은 기쁜 소식이다. 우리의 가난, 절실함의 선포, 우상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우리의 한계, 우리의 무능력, 존재론적 불완전함의 선포, 이것은 더 이상 수치스러운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 때문에 사랑받고 있다는 가슴 벅찬 깨달음인 것이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감출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메시지(message)이다. 이 메시지는 몇 분 동안의 어떤 방법이나 저돌적인 충돌로서 혹은 신체적으로 느끼는 새로운 황홀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을 다른 인격체에게 맡기는 모험에 의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일생을 거는 위험이며 모험이고 결단이며 투신인 것이다.
기도의 순간은 (1)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가장 깊은 갈망에, 자신이 믿는다고 고백하는 인격적 하느님께 자유로이 들어가는 현존의 행위로써, 믿음과 희망의 행위이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2) 기도는 또한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자신의 가난과 하느님의 절실함을 인식하고 그 사실을 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론적 우연성을 호소하는 것이며, (3)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응답뿐만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4) 자신이 하느님의 존재 안에서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분께 돌아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전 과정-침잠하고 정직해지며 가지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에 중심을 모으는-은 그 자체가 이미 심원한 반문화적 행위들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사실 상품화의 생활과 대조적으로 기도는 도달하기 어렵고 불가능하며 가까이 하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기도는 우리의 통제. 우리의 힘을 초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 두렵기조차 한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친밀하고 본질적인 것이 가장 낯설고 두려운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우리의 친밀함으로부터 도망친다. 이처럼 기도는 문화에 저항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 정체성에 관한 재확인이며 기도는 또한 산산이 부서진 우리의 삶을 서로 다시 연결시키고 본연의 우리로 -탈상품화되도록- 되돌아오게 한다.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존 프란시스 카바나 신부 저서에서)
기도생활은 사랑의 움직임 파스카 신앙의 생활화인 것이다. 공동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친밀함을 선언할 뿐만 아니라 이웃 앞에서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갈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공동츼 기도는 기존의 문화적 가치들이 강요하는 고집(isolation)과 분리(separateness)를 극복하게 해준다. 또한 공동의 기도는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지니고 있는 나약함을 인정하고, 자기 합리화와 자존이라는 우상들이 사랑이란 위협적이고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거짓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고 요청하는 것이다.
아마 여기에 이를 때 우리는 기도가 지니는 정치·사회적 맥락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문화적 환경과 분리되어 있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 그 무엇이 결코 아니다. 실제로 기도가 지니고 있는 문화·사회 그리고 심리적 측면이 바로 기도로 하여금 기존의 문화환경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이 바로 기존의 문화가 요구하는 문화적 복음의 굴레를 깨뜨리는 것처럼, 기도의 열매는 문화의 우상들 앞에서 인간이 자유와 원칙과 결단을 행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가 올바로 사회행동을 하고 오랫동안 그 투신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극적이고도 강력한 유지의 힘이 된다.
하느님 나라가 이 땅위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는 주의 기도의 실현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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