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날 한 끼 굶는 날, 유달리 시장 끼에 허덕이던 때를 기억하며 단식을 정말 나의 생활의 일부로 삼기에는 요원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검진을
위해 한 끼쯤 굶는 것은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예수님은 40일간을 단식하셨다. 정말 상상조차 안 된다.
오늘날도 여러
차례 단식을 하며 기도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본다. 정말 존경스럽다. 그런데 진정으로 오늘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단식은 무엇일까, 풍부한 물질문명
속에서 한 끼 정도 안 먹는다는 것보다 더 가치로운 단식이라면 무엇보다 감정의 단식, 다시 말하면 무절제한 감정과 비판의 휴식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침묵의 바다에서 잠잠히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과 오관으로 짓는 무수한 죄와 오류에서 벗어나는 것이 때로는 힘들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너무나 많은 생각과 계획 때문에 머리가 다 빠지고 골이 띵해 질 때가 있다. 쓸데없는 것들을 부둥켜 안고, 버리고 청소하면
좋을 것 같은 그런 오만가지 허섭스레기 같은 잡념을 덮고 편안히 주님 안에 쉬는 시간이 참으로 아쉬운 데도 막상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할일 없이 바쁜 현대인, 그래서 누군가가 말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병은 혼자 가만히 방에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생각을 비우고 잠시 쉬는 시간, 그래야 참 용서도 있고 참 평화도 있다. 물론 작은 상처를 치료할 시간도 더더욱 필요하고 성찰할 시간도
필요한데.....,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 쌓아 놓는 원망은 또 무엇인가. 사랑의 가장 큰 척도는 용서이며 지난 일을 깡그리 잊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용서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과의 화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서로 용서하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느님은 그래서 한번 용서하신 죄는 더는 기억하지 못하는 건망증을 지니고 계신다.
너희 죄가 진홍 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하며 너희
죄가 다홍 같이 붉어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이사 1, 18) 주님은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만인에게 자비로우시며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죄를 못 본 체 하신다.(지혜11,28)
40일간을 단식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요번 사순절에 나의 결심은 나에게
조금이라도 불쾌했거나 잘못한 일이 있는 분을 남김없이 용서하고 마음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 것도 기억하지도 남겨두지도 않는 철저한 단식과 금육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찬사를 받으려는 마음에서도 깨끗이 비워지는 단식을 감행하리라 결심해 본다. 길에
밟히는 낙엽 한 송이도 다 거름으로 쓰시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손길에 내어 맡기는 작업, 곧 이것이 오늘 나의 거룩한 단식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