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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anch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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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장면은 예수께서 당신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직접 부르시는 경우와 오늘 복음과 같이 요한이나 안드레아 사도 같은 중재자들을 통해서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는 당사자에게 개인적으로 동기와 목적과 그 의미와 뜻, 의지를 물어보십니다. “그대는 삶에서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그대의 가장 깊은 인간의 갈망은 무엇입니까?” 이런 물음에 분명한 대답 없이 따른다는 것은, 버릴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없게 되므로, 진정 예수를 따를 수 없게 됩니다.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머무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고 도리어 여쭈었습니다. 예수 옆에 거처하는 것, 그분 곁에 머무는 것이 바로 부르심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 거처로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관건은 이 세상의 거처가 아니라 하느님 곁에 거처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 장막을 우리 가운데 마련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집에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렇게 초대하십니다. “와서 보시오”(1, 39). 즉,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와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독자적인 체험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를 스스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라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노릇입니다. 요한복음의 독자는 말씀을 묵상하여 그 깊은 의미를 깨닫고,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그분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첫 번째 제자들이나 “와서 보라” 하신 부르심에 응답한 제자들이 자기 자신들이 보고 체험한 주님을,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같이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고 지적하듯이 말입니다. 안드레아 사도께서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이 "와서 본" 신앙생활에서 체험한 주님을 전하는 중재자 선교사가 반드시 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 시대가 아닌 교회시대인 오늘날 이 같은 중재자로서의 선교사나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다면 주님을 어떻게 찾아 만날 수 있단 말입니까?
한편 교회 공동체 신앙생활을 보면 모든 교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중개인일 뿐인데, 특정 신부, 수녀, 교우 때문에 성당에 다니고 싶지 않아서 다른 성당에 나간다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중재인인데, 그 중재인이 태양 자체이신 그리스도 주님을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의 때만 보지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멀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편 판공성사나 고백성사 때 '냉담한 지 5년, 10년, 15년 되었습니다' 하고 고백하면서도 그 밖에는 죄가 없다는 식으로 고백성사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오랜 시간동안 이산가족으로 살다가 다시 만나게 되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와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자신의 현실 상황이나 자기가 가진 것 중 일정 부분을 버리고 주님께 떠나가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고기잡이 어부 네 사람을 당신 제자로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더 이상 고기 잡는 어부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첫 사도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몬은 베드로, 즉 반석으로써 우리 교회 공동체의 토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버리고 떠나기를 하면 완덕과 자기 완성과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모 일간지에 실린 법정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를 묵상해 봅니다.
법정 스님의 생애는 몇 차례의 ‘버리고 떠나기’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출가입니다. 외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던 청년은 1954년 싸락눈이 내리던 날 홀연히 집을 나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평소 흠모했던 등대지기의 꿈을 접고 ‘진리의 빛’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세속적 욕망을 버리는 대신 그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1975년 10월 1일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 불일암으로 들어간 일입니다. 글 잘 쓰고 의식 있는 40대 초반의 촉망받는 중진 스님이었던 그는 “시국 비판이나 하며 글 재주만 부리다가는 중노릇 제대로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칸 암자에서 혼자 밥 짓고 밭을 매며 17년을 지내면서 ‘무소유’, ‘산방한담山房閑談’, ‘텅 빈 충만’ 등 10여 권의 산문집을 펴냈습니다. 승속僧俗의 명예를 과감히 떨쳐 버 덕분에 사색의 자유와 자연과의 교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1992년 4월 19일 강원도 산골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오두막으로 다시 거처를 옳긴 일입니다. ‘큰스님’으로 불리며 절 집의 높은 자리에 앉는 대신 자신만의 수행 공간과 절대 고독의 희열을 얻게 된 것입니다.
네 번째는 2003년 12월 21일 한 여신도가 오랜 간청 끝에 스님에게 시주한 길상사의 창건 6주년 기념 법회에서 회주(會主: 절의 원로 스님) 자리를 미련 없이 내놓은 일입니다. 주지 한 번 맡지 않았던 스님이 떠밀리다시피 맡았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차츰 틀이 잡혀 가자 “수행에는 정년이 없으나 직위에는 반드시 정년이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주저 없이 실천한 것입니다. 많은 이가 아쉬워했지만 스님은 큰 짐을 벗어던진 듯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은 이날 법회 후 차 한 잔을 따라 주며 “때가 되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육신을 벗어버리고 싶다”고 지나치듯 말했습니다. 법정 스님이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은 이후 봄가을 두 차례만 길상사에서 공식 법회를 열고 있습니다.
수행의 고비마다 버림으로써 더 큰 자유를 얻은 스님이 올해로 출가 52년을 맞습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따라 버리고 떠나기 일생을 사시면서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 다섯이 되신 스님이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시중드는 상좌上佐 하나 두지 않은 채 손수 밥 짓고 빨래하며 엄동설한을 보내며 홀로 서 있는 깊은 산중의 거목 같은 수행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기의 철강 왕 카네기는 어린 시절 자기 어머니와 함께 식료품 슈퍼에 따라 갔다가 먹음직스러운 체리들이 쌓인 코너에 눈길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슈퍼 주인은 소년 카네기에게 그냥 두 손으로 한 옴큼 가져가라고 말했으나 공짜로 가져간다는 것도 그렇고 자기 욕심을 버리고 머뭇거리고 가만있으니까 주인이 그 큰 손으로 두 옴큼 덥석 집어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카네기는 자기 일생동안 자기 자신의 그 조그마한 손이나 욕심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을 버리고 떠나기만 하면 항상 자기에게 더 큰 것이 돌아온다는 진리로 세기의 철강왕 세기의 갑부가 될 수 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가 자기 자신의 주장이나 욕심을 버리고 떠나기를 못해서 갈등이 증폭되고 끓는 주전자에서 수증기 열이 정상적으로 빠져 나아가는 탈출구 구멍이 없이 지글지글 끓다가 엉뚱한 데로 폭발하고 온데간데없는 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연중 첫 주일에 버릴 것은 버리고 떠날 것은 떠나는, 자신만의 주장을 버리고 따라 갈 것을 따라감으로써 더 큰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은총의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봅시다.
주님, 보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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