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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인수 요한 신부 <pisj@yaho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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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묵상하는 복음은 예수님의 잉태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 처녀 마리아에 대한 것이다. 이 복음의 바로 앞부분에는 세례자 요한의 잉태에 관한 즈카르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두 복음은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서도 큰 차이점이 있다.
즈카르야는 젊었을 때부터 아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으며 아기를 주십사하고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즈카르야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원의 역사에서 하느님께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이들에게 아이를 가지게 했던 사건들을. 그러나 그는 그 성경 말씀들을 지식적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기도를 꼭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 없이 기도하였기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를 통하여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아기를 주시겠다고 전한 “기쁜 소식”을 막상 접하였지만 천사의 말을 닫힌 마음으로 믿지를 않았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논리에 갇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처녀 마리아는 아기를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다른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가 대림 동안에 종종 부르는 성가 “구세주 빨리 오사~”라고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단지 그 기다림과 기도가 처녀 마리아 자신에게 이루어지리라고는 상상을 못하였을 따름이다. 마리아 역시 세상의 논리와 인간적인 생각과 함께 남자를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구세주를 잉태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했다.
두 인물의 차이점은 한계 지어진 인식과 사고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조건의 상황에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접하면서 인간적인 한계에 계속 갇혀있는 것과 그 한계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수용하고 동의를 하면서 그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한 길 사람 속도 알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면 하느님의 섭리와 신비를 인간적인 이해가 가능할 때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불신앙에 해당할 것이다.
생각한다고 할 때 열린 생각과 닫힌 생각으로 나눌 수 있다. 닫힌 생각은 낮은 수준의 인식과 개념, 이전의 경험 등에 얽매여 발전 가능성이 없는 고정된 사고방식이다. 정해진 어떤 것으로만 생각하며 심한 경우를 일컬어서 ‘강박’이라고 한다. 강박의 상태에서는 다른 존재와 친밀한 친교의 관계를 이룰 수 없다. 자신이 생각했던 “그렇게”가 되지 않으면 두려움에 휩싸인다. 변화와 새로운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두 인물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했던 첫 말은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였던 것이다. 두려움은 변화에 대한 불안에서 나온다. 두려움의 무장 해제는 강박에서 벗어나 엄청난 신앙의 신비 앞에 마음을 열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를 고백할 수 있도록 한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 31)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한계 짓고 있는 인간적인 조건들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루카 1, 35)을 거부하지는 않는지 성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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