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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호 목사<yiss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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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뱃속에서(예레20,7~13; 마태10,34~39)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성 바오로의 서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 살아갑시다.”(갈라5,25) 어떤 번역은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만일 성령이 우리 삶의 원천이라면, 그 성령으로 하여금 또한 우리의 진로를 지시하게 하십시오.”

성령강림절 이후 우리의 삶의 연습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맞추어, 성령의 리듬에 맞추어,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어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어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히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이나 환상에 따라(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실재(reality)를 따라(맞추어)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삶이 확고해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세운 규칙, 자기가 경험한 질서, 자기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고집스럽게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을 수학공식이나 과학 실험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이러할 때는 어느 공식에 대입하고 저러저러할 때는 어떤 과정을 거친다는 식입니다. 심지어 신앙인 가운데서도, 아니 자신의 신앙이 확고하면 확고하다고 생각할수록 더욱 어떤 공식 안에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하느님도 자신이 만든 공식에 집어넣습니다. 그렇게 되면, 삶은 경직되고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살아간다는 의미를 점점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면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따라 살아갈 수가 없고, 점점 모든 것을 자신의 공식(혹은 자신의 신앙 공식)에 집어넣으려고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자기의 삶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그렇게 재단하려고 하게 됩니다.

오히려,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살아가려고 할 때,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따라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모순, 역설, 상반되는 것들의 긴장, 부조리 등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됩니다. 내 생각이나 환상에 따라 살아가게 되면, 이런 것들을 피하거나 눌러 놓거나 여러 가지 자기합리화나 변명으로 이런 것들을 외면하거나 왜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따라 살아가려고 하면, 모순, 역설, 상반되는 것들의 긴장, 부조리 등을 있는 그대로 만나야 합니다.

이때 우리 삶은 이쪽으로 왔다 저쪽으로 갔다 합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은 일치되지 못하고, 나의 마음과 생각도 조화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강한 것 같지만 약합니다. 온유한 것 같지만 어떤 때는 표독스럽습니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나의 욕심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뭔가를 이루었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가 버리고 맙니다. 영적인 진보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그대로 돌아와 버린 나를 보게 됩니다. 나와 세상, 나와 이웃은 조화롭지 못하고 늘 불협화음을 이룹니다.

성 바오로의 말씀 그대로 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도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습니까?”(로마7,15. 19. 24)

토마스 머튼은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사가 된지 12년째 되던 1953, 종신서원을 한 때부터 5년간의 일기를 책으로 펴냅니다. 요나의 표징(The Sign of Jonas, 토마스 머튼의 영적 일기-요나의 표징, 바오로딸)이라는 책입니다. 그는 니느웨로의 여행이라 이름붙인 이 책 서문에서 요나처럼 자신도 역설의 뱃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향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머튼은 자신의 역설, 갈등, 상반되는 것들의 긴장, 모순을 그대로 끌어안고 여행을 합니다. 이것들을 빨리 자신에게서 제거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 해석해서 종결지어 버리지 않고 이것들을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장()과 자료로 사용합니다. 그는 자신 안에 모순이 있고 긴장이 있고 갈등이 있음에도 하느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죽음의 큰 물고기가 자신을 삼키지만 자신을 다시 운명의 해안가로 데려다 놓을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모순과 긴장, 갈등은 영적인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삶에 핵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진정한 의미에서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려고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소위 하느님의 뜻을 그는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떤 글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자신 안에 펼쳐진 길을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길이 어디서 끝날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길을 잃고 죽음의 그늘에서 헤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자신은 언제나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 계시고, 자신 혼자 위험에 대항하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고독 속의 명상, 성바오로, 85~86) 그는 철저하게 하느님을 신뢰함으로써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신뢰했습니다.

우리는 자꾸 답을 가지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해결해 주셔야 당신이 하느님이지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기도란, 당연히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이나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헨리 나우웬은 환상(illusion)에서 기도로 향하는 움직임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기도란 수없이 자기를 방어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변호하고 설명하고, 마침내 이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인이나 환경에 책임을 돌리고 공격하고 비난하고 하는데서 놓여나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 다시 말하면 환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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