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상지원단

조회 수 88 추천 수 0 댓글 0
Extra Form
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잠에서 깨어나라, 죽음에서 일어나라. 그리스께서 너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리라.(에페 5, 8, 14) 수고수난의 치욕 속에 심어졌던 작은 씨앗 같은 것이 주의 변모 영광 속에서 수확되었다는 우리의 신앙을 선언하기 위한 주의 변모 축일이다.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 산들을 정복한 한 등산가에게 어느 기자가 "당신은 왜 산에 오르려고 하십니까?" 라는 우문에 "불쑥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대답은 그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과 같은 과정이 바로 인생이라는 의미와 내용이다.


오늘 복음성서 장면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셨다. 장차 당신 자신이 걸어가실 수고수난의 정도의 길, 끝장의 영광을 미리 맛보기로 나타내 보이시기 위한 것이다. 성급한 베드로가 나서서 "여기서 저희가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초막 셋을 지어 자리잡고 눌러 머뭅시다." 예수님께서는 "꿈 깨라!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마땅히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시며 산에서 내려오신 것이다. 내려오시기 직전 바로 그때에 구름이 일며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복음성서 장면에서 높은 산에서 아래로 내려가시는 예수님과 세 제자들에 대하여 묵상해 보자. 심리통합학(Psychosynthese)의 창설자인 아사지올리(Roberto Assagioli)는 인간의 자기실현을 위한 길의 전형적 특징인 아래로 내려감과 위로 올라감이라는 도식(圖式)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단테가 이 도식을신곡(神曲)에서 매우 잘 표현했다고 한다: 신곡의 상징적이고 중심적인 의미는 하나의 완전한 심리 통합학을 잘 표현하고 있는 표상이다. 지옥을 순례하는 대목인 제1부는 깊은 무의식 세계를 분석하면서 조사하는 과정이다. 연옥으로 올라가는 것을 다른 제2부는 윤리적인 정화와 생동적인 기술들을 사용하여 의식의 세계로 서서히 올라가는 과정이다. 하늘 또는 천국에 도달한 것을 다룬 제3부는 다양한 단계를 거쳐서 마침내 우주적 정신인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이다. 하느님 안에서는 사랑과 의지 모든 것이 녹아들게 된다(Assagioli 238이하).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은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을 거치게 되어 있다. 심리분석가인 괴레스(Albert G rres)는 떼르뚤리안(Tertullian)"caro cardo salutis(육체는 구원과 연결시키는 경첩)"란 말을 육체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인간이란 사실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위로부터의 영성은 자주 우리의 육체를 건너뛰어 하느님께 나아가려고 한다. 위로부터의 영성은 우리의 육체가 정신으로 하여금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진부한 일인 육체의 요구들을 채워나가는 일에 관심과 시간을 쏟게 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다. 위로부터의 영성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천사처럼 육체적인 요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은 육체를 거쳐야 갈 수 있다: caro cardo salutis.


전통적인 영성은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라는 표상을 알고 있다. 영성의 길은 위로 올라가도록 인도하는 사다리와 전적으로 비교할 만하다. 그러나 사다리는 또한 땅에 단단히 박혀 있다. 사다리는 우리가 가진 인간성을 받아들일 때에만 위로 인도할 수 있다. 아래로 내려간 사람만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역설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자신의 인간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로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그때마다 언제나 다시 아래로 떨어져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고,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말 것이다.' 에페소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먼저 땅이나 자신의 저승을 향해 아래로 내려간 사람만이 하늘로 올라간다.'아래로부터의 영성에 관한 좋은 예로 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이야기 속에서 한 얼간이는 아버지의 요청으로 바른 것을 배우기 위해 먼 이국 땅으로 가게 되었다. 그 후 세 번이나 집에 돌아와 무엇을 배웠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그가 첫 번째로 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 저는 개들이 어떻게 짖는가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그의 두 번째 대답은 "새들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배웠다"고 했고, 세 번째 대답은 "개구리들이 어떻게 노래하는가를 배웠다"고 했다. 이러한 아들의 대답에 그를 지성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울 가능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큰 실망감에 대한 심한 화를 내면서 그 얼간이 아들을 밖으로 쫓아내고 말았다" (Laiblin 295 이하). 그는 밖으로 쫓겨나 정처없이 걸어가다가 한 성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어가고자 했다. 성의 주인이 그에게 잠자리로 내줄 수 있는 곳은 오직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이 살고 있는 성탑 뿐이었다. 개들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물어뜯은 경력이 있는 아주 사나운 놈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없이 먹을 것을 조금 가지고 성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짖어대는 개들에게 매우 다정한 태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개들은 보물 하나를 지키느라고 그렇게 사납게 짖는다는 것을 그에게 드러냈다. 그리고 또 그에게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으며, 보물을 찾아 꺼내는 것을 도와주었다.


내 안에 숨겨져 있는 나의 보물에게 다가가는 길도 사납게 짖는 개들과 대화함으로써, 나의 고통, 나의 문제, 나의 두려움, 나의 상처 등 내 안에서 짖으면서 나의 에너지를 쇠진(衰盡)시키는 존재들과 대화함으로써 갈 수 있다. 위로부터의 영성이라면 그 사나운 개들을 성탑 안에 가두어두고 그 옆에 하나의 이상적인 건축물을 세우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는 혹시 개가 문을 부수고 뛰쳐나와 사람을 물지나 않을지 언제나 걱정해야 한다.


열심한 사람에게는 자신 안에 늘 자리잡고 있는 욕구와 외부에서 다가오는 유혹이 언제나 걱정거리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삶을 자유롭게 펼쳐나가지 못하고 자신이 설정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 버리게 된다. 우리가 억압하거나 한쪽으로 밀쳐두는 것들은 한편으로 우리의 생명력이기도 하기 때문에, 억압하는 것과 한쪽으로 밀쳐두는 것이 많을수록 그만큼 우리의 생명력은 활기를 잃게 된다.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은 왕성한 생명력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생명력이 왕성한 개들을 가두어버리면, 그만큼 우리에게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길에 필요한 힘을 잃게 된다. 성탑은 인간이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가 되어야 하는 존재의 한 표상이다.


성탑은 땅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튼튼한 기초에서 시작하여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성탑은 일반적으로 둥근 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전체를 표상한다. 만약 우리가 순수한 이상주의를 지켜가기 위해 우리의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을 가두어둔다면, 우리는 그것들이 언제 밖으로 뛰쳐나와 물어뜯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불안해하며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며,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 안으로 들어올 경우에, 그 안에서 짖어대는 위험한 개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개들이 밖으로 못나오도록 가두면 가둘수록, 그만큼 더 그 개들은 우리에게 위험한 존재가 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용기를 내어 그 성탑 안으로 들어가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에게 상냥한 태도로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보물들을 지키고 있는지 나에게 알려줄 것이다. 내 안에 들어 있는 하나의 새로운 생명력과 순수함이 그 보물일 수 있고, 하느님께서 본래 만드신 참된 나 자신이 보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축 떼나 금을 소유하는 것에 삶의 행복이 있지는 않다. 행복이 거주하는 장소는 바로 영혼이다."(데모크리토스)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대로 많은 재산을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성취하려 한다. 그러나 재산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아무리 많은 업적을 이룬다 하더라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아무리 많은 업적을 쌓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존경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다.


행복은 영혼 안에, 사람의 깊은 내면세계에 거주한다. 사람이 자기 자신과 일치하는 곳에,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느끼는 곳에, 자신의 신적 가치를 아는 곳에 어떤 실패도, 어떤 상실과 소외도 빼앗아갈 수 없는 행복이 존재한다. 우리 인간 존재의 중심에 계시는 성령, 영혼 안으로 내려가야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과 함께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성서 장면에서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의 높은 산에서 아래로 이 세상사는 우리 세상으로 내려와서 이 사순절에 벌어지는 수고수난의 정도의 십자가 사랑의 과정을 겪어야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변모로 인간 완성의 길에 이를 수 있다는 우리 삶의 수단과 방법과 가치관의 선언 신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그의 말을 잘 듣는 믿음의 덕행과 사랑의 십자가 길인 애덕과 오늘의 영광스러운 예수의 변모 사건이 장차 자신의 완성의 변모에 대한 희망의 덕행을 닦아 나아가 성령의 은총인 이 세 가지 덕행에 기초하여 이 같은 영광스러운 변모를 위한 관상 기도생활 상태로 우리 자신이 주님을 보고 미리 맛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이 사랑을 일깨우고 사랑이 사랑을 보게 한다. 오늘 복음성서에서 높은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하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이는 하나 밖에 없는 당신 생명을 벗을 위하여 바치신 그 사랑의 눈이 열리기까지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제자들과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당부하시고자 하신 의도는 너희들도 내가 하나 밖에 없는 내 생명을 바쳐 죽기까지 벗을 사랑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너희도 실천하여야만 나와 같은 예수의 거룩한 변모의 영광을 차지할 것이라는 것이다.


! 우리 자신들도 오늘 예수의 거룩한 변모 영광이 우리 자신의 거룩한 변모 영광에 이르는 길목에 들어서서 믿음과 사랑, 희망의 정도의 길로 다만 앞장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십시다.


나는 거닐리라, 주님 앞에서, 생명의 지역에서 거닐리라.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작성자
1012 부활 제3주일 - 택시기사와 손님 2022.05.01 59 김기홍 신부
1011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 그대들에게 평화! 2022.04.24 30 서인석 신부
1010 주님 부활 대축일(예수 부활 대축일) 2022.04.17 52 서인석 신부
1009 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2.04.10 54 서인석 신부
1008 사순 제5주일(요한 12,20 - 33) -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2022.04.03 72 서인석 신부
1007 사순 제4주일 – 수난의 정도(正道) 2022.03.27 95 안충석 루까 신부
1006 사순 제3주일 - 성전 정화사건 2022.03.20 168 안충석 루까 신부
» 사순 제2주일 - 주님의 거룩한 변모 2022.03.13 88 안충석 루까 신부
1004 사순 제1주일 - 유혹과 대항한다는 것은 2022.03.06 84 안충석 루까 신부
1003 연중 제8주일 - 양심을 다스리는 권한 2022.02.27 38 리카르트 굿츠빌러
1002 연중 제7주일 - 신앙의 위기 2022.02.21 68 토머스 키팅 신부
1001 연중 제6주일 - 가나안 여자의 믿음(마태`15,21-28) 2022.02.13 78 토머스 키팅 신부
1000 연중 제5주일 ㅡ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마르코 1.29-39) 2022.02.07 75 토머스 키팅 신부
999 연중 제4주일 2022.01.30 26 토머스 키팅 신부
998 연중 제3주일 2022.01.23 41 토머스 키팅 신부
997 연중 제2주일 2022.01.16 30 토머스 키팅 신부
996 주님 세례 축일 2022.01.09 29 토머스 키팅 신부
995 주님 공현 대축일 2022.01.02 24 토머스 키팅 신부
994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file 2021.12.27 33 토머스 키팅 신부
993 대림 제4주일 2021.12.19 22 토머스 키팅 신부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56 Next ›
/ 56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