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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충석 루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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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에 재 받으시고 사순절을 맞으며 안녕하셨습니까?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지난 재의 수요일에 우리 머리 위에 재 얹으며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로 잿더미로 돌아가기 직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마지막 한 마디 유언은 흙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 말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성서 장면은 성령이 예수를 악마와 싸워 이기시도록 광야로 내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한 인간으로서 거짓자아에 대한 악령들의 유혹과 싸워 참된 자아로서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절대적인 사랑이신 하느님을 반면에 우리 인간은 상대적으로 거짓자아에 대한 악령의 유혹을 당하며 투쟁하고 극복하여야만 하느님을 참된 자아로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유혹을 통해서 하느님께 우리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수도승들은 철두철미 유혹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어떤 사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지 못한다. 수도승도 이와 마찬가지로 유혹을 당하지 않고 견디어내지 못한다면 성인이 되지 못한다.”(N 396)
이는 마치 야자나무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싱싱하고 아름다운 야자나무를 보고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는 그 나무의 성장을 막기 위해 꼭대기에 커다란 돌을 얹어놓았습니다. 수 년 후에 그가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야자나무는 주위에 있는 다른 어느 나무들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자라 있었습니다. 돌은 오히려 그 나무의 뿌리를 더 깊이 땅속으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더 높이 치솟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나무에게 돌이 오히려 성장을 촉진시키듯이, 수도승에게 유혹 역시 하느님 안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고 더욱 더 하느님께 신뢰하도록 고무하는 도전입니다. 끊임없는 도전이 수도승을 내적으로 강화시키며 성인(成人)으로 성숙시킵니다. 그러나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는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도승들은 유혹이 우리를 성인(成人)으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유혹은 우리가 나무 줄기를 지탱하는 뿌리와 만나게 합니다. 유혹에 대항하는 것은 진리와 대면하는 것입니다. 한 노부는 말합니다. “유혹을 피한다면 아무도 거룩해질 수 없다. 유익한 유혹을 피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피하는 사람이다. 성인(聖人)에게 왕관을 마련해 주는 것은 실상 유혹들이다”(N 595). 죄의 근원 뿌리 때문에 실제로 신약성서에서도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할 수 있고 따라서 죄 사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며, 아울러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I요한 3, 6. 9; 5, 18)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지의 구름저자가 이 유혹과 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저항을 다루는 대목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 책은 과거의 죄에 대한 기억들을 모조리 확실하게 제압해야 한다는 점을 매우 조리 있게 이야기하고 나서 유혹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가지 영적 묘안들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묘안은 유혹들 너머로 눈을 주고 거기에서 다른 무엇을 무지의 구름에 휩싸여 계시는 하느님을 찾아내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는 유혹을 애써 무시하고 하느님께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이 점이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고 인정하며 두 번째 묘안을 제시하는데, 이는 겉보기에는 극히 위험해 보입니다. “그대가 이런 생각들을 물리치기에 완전히 역부족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전투에 져서 굽신거리는 포로처럼 그들 앞에 넙죽 엎드린 채 더 이상 그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을 바보짓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대는 그대 자신을 적들의 손아귀에 붙잡힌 상태로 하느님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32)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생각은 유혹이 피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일 때 관상가는 그 가운데서도 완전히 편한 마음으로 친히 권능을 띠고 내려오시어 그대의 원수들에게 앙갚음해 주시고, 그대를 안아 올려 다정하게 영혼의 눈물을 닦아주시는하느님께 자신을 남김없이 바쳐야 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32).


어떤 이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느님이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도록 간청할 때 문제를 느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유혹이란 배반의 유혹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배반하는 상황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십사고 청하라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고, 당신 친히 그들을 위해 그렇게 간청하였습니다(루가 22, 31이하; 요한 17, 14이하 참조)(Grundmann, Matthäus, 203). 반면에 수도승들이 말하는 유혹이란 우리 안에 있는 생각과 욕정과 악마들을 가리킵니다. 세부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그대 자신에 다름 아닌 그 죄의 덩어리”(43)를 하나의 총체로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인간의 총체적 관계로 확인함에 따라 나타나는 특정한 효과들이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선과 자비에 대한 참신한 감각을 제공하며, 영혼이 늘 겸손을 유지하도록 돕고, 날카로우면서도 차분한 슬픔을 불러일으켜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거스르며 별개로 존재한다는 의식을 씻어내는 효과가 바로 그것입니다(44).


그래서 어느 노부는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마태 6, 13)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유혹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유혹에 지배당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을 행하지 않게 되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 유혹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십사는 것입니다.”(Apo 1159). 유혹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게 합니다. 오히려 유혹에 떨어진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하느님과 친밀하게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는 유혹 중에 하느님의 현존을 더 깊이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성덕에 대해 허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인들은 모든 유혹을 초월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유혹을 알 수 있는 길은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 선행도 할 수 없다는 것과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하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만이 유혹의 투쟁에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실 수 있고 이런 과정에서 하느님을 깊은 평화를 주시는 분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라 암마는 13년 간 더러운 악령으로부터 무섭게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견디어냈다고 합니다. 그는 한 번도 시련이 그치기를 기도하지 않고 오히려 오 하느님, 제게 힘을 주소서’”(Apo 884)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승리했습니다. 더러운 영이 사라, 네가 나를 이겼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니라 나의 주님 그리스도께서 너를 이기신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Apo 885).
마태오 복음 4111, 루가 복음 4112절에 나오는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당하신 세 가지 유혹 장면은 우리 신앙인으로서 어느 누구나 악령의 유혹에 빠져 사느냐?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뛰어 넘는 하느님께 대한 섬김으로 그리스도가 지닌 인간적 나약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의지와 섬김으로 이루어 나아갈 것인가? 투쟁하여 양자 택일할 것입니다. 첫째, 둘째 유혹인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보시오 하는 유혹을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과 거리가 먼 기적을 마술이라고 거부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유혹에서 악령과 한 통 속으로 불의부정한 세상의 권력 통치권도 마다하시고 하느님께만 순종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불트만 성서학자의 해석이며 많은 성서학자들은 유혹사화가 당시에 갖가지 메시아 구세주 그릇된 하느님 神觀에 대하여 예수는 마술사 기적쟁이도 아니시고 철두철미 모세율법 토라 만을 섬기며 율법보다 더한 사랑으로 인간의 정도의 길을 따라 사신 구세주 메시아 참된 하느님 신관을 드러내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 당 시대에 오해받은 우리 기복 신앙의 기적쟁이나 도깨비 방망이 마술적 기복만을 이루어주시는 분으로 합세하여 쉬거나 냉담하는 언제나 타인일 뿐으로 우리 일상생활 변두리로 밀어 버리기 일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사회가 부정부패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그 고리를 끊어 버리지 못하는 것은 유혹에 빠져 범법자들의 처벌이 너무나도 가볍게 사면이니, 공로에 의한 집행유예 등 정치적 타협으로 법 기강을 해이하게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너무나도 쉽게 유혹에 빠지는 것은 지금 당장 그 처벌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유혹에 빠져도 이 세상 사는데 별 영향이 없다는 식인 것입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데 모두가 한통 속인데 나만 정도를 따라 살 수 없다는 악령과 한통 속의 삶의 수단과 방법, 삶의 양식 방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신앙생활에서는 이 세상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순절 40일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사는 삶의 방식을 따라 수고수난의 정도의 삶의 수단과 방법을 따라 살라고 초대하십니다. 한편 당신 자신이 우리와 함께 그 유혹을 당하시며 극복해 나아가신다는 것이 40 광야에서 유혹을 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양이십니다.


우리가 맞이한 이 사순절은 우리와 함께 유혹을 당하시고 수고 수난의 정도와 함께 고통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래로부터 영성 신앙생활로 실로 나의 영원한 사랑의 동반자로서 함께 할 때에만 불의부정과 악령의 유혹에서 맞서 싸워 사탄의 권세보다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함께 차지하여 누릴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 실망과 실의 빠져 쉬거나 냉담하여 거리를 두고 있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다가올 부활의 영광을 보시고 기쁨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악들을 짊어지시고 대리 보속, 즉 우리를 따라 오라 하시는 이 40일 광야 사순절을 지내라 하십니다.


주님, 당신의 언약을 지키는 이에게, 주님의 모든 길은 사랑과 진리 이오이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보라! 나는 이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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